1998년 가수로 데뷔한 비(사진)는 이후 드라마, 영화 등에 출연하면서 본명인 정지훈으로 활동하고 있다. 데뷔하자마자 ‘월드 스타’가 된 그는 연습생 시절 잠도 자지 않고 춤추고 노래하던 지독한 ‘연습 벌레’였다. 당시 그의 소속사 대표이던 홍승성 큐브엔터테인먼트 회장은 다른 연습생들에게 “비만큼만 해라. 그러면 스타가 안될 수가 없다”며 독려했다는 일화가 파다했을 정도다. 가수로서의 비나, 배우로서의 정지훈이나 그는 늘 이번이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치열하게 임한다.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자전차와 엄복동’에서도 그 치열함은 여전했다. 그를 최근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정지훈은 “자전거를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이 타다 보니 허벅지가 엄청 두꺼워져, 원래 32~33 사이즈 바지를 입는데, 이제는 38~40 사이즈를 입게 됐다. 지금은 안 먹고 살을 빼는 운동을 해서 허벅지 근육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자전차왕 엄복동’에서 주인공 엄복동 역을 맡은 그는 크랭크인 전 3개월 반 가량 국가대표 사이클 선수들이 받는 훈련을 똑같이 받았다. “무대에서든 드라마나 영화에서든 늘 칼을 가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했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늘 칼을 갈듯 하는 게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죠. 체력이 좋기는 하지만 이번 작품을 하면서 몸보신도 많이 했어요.”
영화로는 7년 만에 관객들을 만나는 정지훈이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대본을 보고 아이들 영화나 가족 영화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스포츠 영웅 손기정에 버금가는 인물이 엄복동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박지성, 안정환 선수 등의 활약으로 우리 국민 모두 힘이 났잖아요. 일제 강점기에 일본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을 했는데, 당시 나라를 잃은 우리 민족에게 자긍심과 자부심을 심어준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어요.”
그는 가슴 뭉클했던 장면을 하나 꼽았다. “엄복동 선수가 계속해서 이기니까 일본이 경기를 멈춰 버려요. 화가 난 엄복동이 경기장에 있던 일장기를 뽑아서 던지자 일본군이 엄복동을 총으로 정조준하죠. 엄복동이 위기에 처하자 민중들이 ‘인간 방어벽’을 쳐서 막아 줘요. 일제시대 자전거는 민중들을 위로하는 대중문화와 같은 것이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고달픈 처지를 위로하던 엄복동을 위해 민중이 할 수 있는 것을 그를 보호해주는 것이었을 거예요.”
그러나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 영화가 공개된 이후 자전거 도둑이 된 엄복동을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지나치게 애국심에 기댄 ‘국뽕 영화’라는 평가절하가 있었다. 그러나 정지훈은 엄복동을 민중에게 힘을 준 인물로 봤다. “시사회 이후 좋은 기사들도 나왔지만 평이 좋지 않은 기사들도 봤어요. 인터뷰에 앞서 홍보팀에게도 어떤 질문도 받겠다고 했죠. 일단 엄복동을 영웅화시킨 게 아니라고 봅니다. 민중에게 힘을 준 실존 인물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면 합니다. 저희 아버지 세대에는 삼시 세끼 먹는 게 중요했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한 끼 먹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죠. 엄복동이 자전거 도둑이 된 것은 알지만, 그분이 오죽하면 자전거 도둑이 됐을까 생각해요. 그 일대기가 영화에 들어갔더라도 좋았을 것 같아요. 애국심을 자극한다고 하는데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좋게 봐줬으면 합니다.”
그가 배우 김태희와 결혼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언론은 일제히 ‘세기의 커플’이라 칭했다. 또 지난해에는 둘 사이에서 딸이 태어났다. 같은 배우로서 아내가 조언을 해주냐는 질문을 비롯해 딸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인터뷰마다 아내와 딸에 대해 묻습니다. 그런데 잘못 이야기했다가 잘못 돌아오는 게 있을 수 있어요. 집안 이야기는 안 하고 싶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가장이 된 이후 달라진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좀 더 가벼워진 것 같아요. 19년간 제가 일했던 패턴은 열정과 지독함이었고, 이것의 저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했죠. 그게 많이 놓아지더라고요. 이 작품이 마지막 칼을 가는 영화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앞으로 코믹 영화나 드라마 출연을 타진 중이며, 올해에는 새로운 음반을 내고 공연도 계획하고 있다. “이제 좀 가벼운 장르를 하고 싶어요. 제가 원래 웃기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대중가수로서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난 이미 아이돌이 아니에요. 보아, 이효리, 동방신기를 비롯해 저 정도의 경력이면 획기적인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대중에게 사랑받는 것은 이제 트와이스나 방탄소년단의 몫이에요. 엄정화, 박진영 선배님도 계속해서 음반을 내지만 음원 성적에 신경을 쓰는 건 아닐 겁니다. 성적에 관계없이 현역에서 멋진 플레이어가 되고 싶어요. 다음 음반에서는 홍대 디제이들과 함께할 겁니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제공=셀트리온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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