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기 네덜란드 암스텔강 하구에 두 차례의 큰 홍수가 난 후 다리와 댐을 건설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암스테르담이라는 이름은 암스텔강의 댐에서 비롯됐다. 국토의 25%가 바다보다 낮지만 주민들은 협동해 제방을 쌓고 늪지와 갯벌을 개간해 도시를 건설했다. 14세기 초 북부 상인들의 동맹체인 한자동맹이 활발해지며 번영에 눈을 뜬다. 네덜란드는 9세기 프랑크왕국의 붕괴 후 여러 공국(公國)이 봉건영주 체제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땅이 주인 없는 바다나 늪지를 개간한 것이었기에 교회도 귀족도 그 땅에 대해 선뜻 소유권을 주장하기 어려웠다. 이 같은 비교적 자유스러운 분위기로 인해 15세기 루이 11세 때 프랑스의 개신교도인 위그노가, 16~17세기에는 유대인이 유럽 남부와 동부로부터 종교박해를 피해 이주해오면서 원주민인 켈트족·게르만족과 함께 다민족 사회를 구성했다.
1515년 신성로마제국 혈통을 이어가던 합스부르크왕가가 카를 5세를 스페인 왕과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임명하면서 스페인 왕이 네덜란드를 직접 통치하게 됐다. 가톨릭 수호국을 자청한 스페인 왕은 세금을 추가로 부과하고 신교도를 거세게 탄압했다. 이에 오렌지가 윌리엄공의 지휘하에 독립투쟁을 전개해 1581년 독립을 선언했고 유럽의 신교와 구교 간에 벌어진 30년 전쟁이 끝난 1648년에 완전히 독립하게 된다. 암스테르담은 그 저항의 주요 거점이었다.
암스테르담은 지금도 커피숍에서 커피와 함께 마리화나를 구매할 수 있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매매가 합법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보다 일찍 주식회사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다. 이는 자연에 대한 거센 도전과 종교적 자유를 향한 투쟁의 산물이다. 네덜란드는 이를 토대로 17세기부터 황금시대를 열어간다.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동인도회사를, 아프리카 서부와 아메리카 무역을 위해 서인도회사를 세우면서 암스테르담은 세계 최대의 상업도시이자 금융중심지로 발전했다.
최근 암스테르담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로 가장 큰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외국 기업이 무려 153개나 들어와 일자리 7,200개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BBC는 그중 42개 기업이 영국에서 이사 간 것이라고 보도했다. 포퓰리즘 때문에 국민들이 큰 고통을 겪는 영국의 사례가 결코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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