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책임을 이어받은 ‘어머니’는 생활비와 아이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생활 전선에 나서지만 혹독한 시련만을 겪으며 포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지인의 소개를 받아 서울 송파에 위치한 한 냉면집에 하루 일하러 갔다”며 “내 사정을 뻔히 아는 냉면집 사장이 한 달 정도 일해볼 생각 없느냐고 물으면서 일단 한 달 정도 일하면 월급도 주고 뽀뽀도 해준다고 농을 건넸다. 그 순간만큼은 웃어넘겼지만 걸어서 집까지 오면서 한참을 울었다”고 경력단절을 겪은 가장 어머니의 서러움을 토로했다.
유가족인 김향금씨 역시 “사회경험이 부족한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이 파출부와 식당 일, 김치 담그는 일 등이 전부”라며 “강남의 오래된 단독주택이 모여 있는 은곡마을에 파출부 일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으슥한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일당으로 받은 7만5,000원을 잃어버릴까 봐 손에 꼭 쥐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해 눈물을 훔쳐야만 했다”고 가장으로 나선 어머니의 어려움을 말했다.
이처럼 가장의 역할을 떠안은 ‘어머니’들은 큰 소득을 얻지 못하면서도 정부의 혜택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각종 자격증 등을 공부해 국가계약직으로 근무해도 월급이 낮아 생활형편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그렇다고 정부의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하자니 소득이 기준치를 살짝 넘어 그마저도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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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유가족인 B씨는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일을 하다 보니 저축은커녕 생활형편도 나아지지 않는다”며 “주변에서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권해서 알아보니 기준치를 살짝 넘어서 대상에 포함되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남편과 사별한 후 수입이 3분의1로 줄었지만 가정의 터전인 집을 팔지 않고 버티다 보니 집 가진 게 오히려 기초수급 대상자 선정에 방해가 된다”며 “더 높은 수입을 얻기 위해 다른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여자 나이 40세 중반을 넘으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더라”고 덧붙였다.
다만 B씨는 “기초수급 대상자 등 저소득층 복지 울타리에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못 빠져나올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를 악물고 산다”면서도 “하지만 악착같이 살아도 여자 벌이로 생계를 책임지다 보니 미래를 꿈꾸는 게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고 강조했다.
/김상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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