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년 전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라는 고종의 특명을 받고 파견된 ‘헤이그 특사’가 실패했다는 일반적 인식과 달리 실제로는 상당한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들이 일본의 갖은 방해로 지난 1907년 2차 만국평화회의에는 참석하지 못 했지만 회의장 밖에서 각국 대표 사절단을 상대로 ‘살롱(사랑방) 외교’를 통해 일본의 부당한 한국 탄압을 알리고 대한제국의 주권을 보장받기 위한 활동을 펼쳤다는 내용이 담긴 당시 해외 언론 기사가 최초로 공개됐다.
14일 고혜련 독일 뷔르츠부르크대 중국학과 초빙교수가 제공한 당시 네덜란드와 독일 언론 기사에 따르면 헤이그로 파견된 특사 이위종·이상설 등은 일본의 방해로 네덜란드 수도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 참석이 좌절되자 회의장 밖 맞은편 건물에서 ‘살롱 외교’에 공을 들였다. 당시 유럽에서는 유력자가 자택에 정치인과 예술가들을 불러 토론하는 ‘살롱’ 문화가 발달해 있었는데 헤이그 특사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여한 주요 인사들을 상대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리고 이들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 월간지 프리덴스-바르테 1907년 7월호 기사에 따르면 헤이그 특사단은 프린센그라흐트 거리 6A번지 집의 반지하 공간에서 국제평화주의자들이 매주 개최한 ‘국제모임’에 참석해 유명 인사들과 함께했다. 네덜란드 신문 헤그쉐 쿠란트의 같은 달 10일 기사도 “지난밤 이준, 이상설, (왕자) 이위종으로 구성된 대한제국 대표사절단이 국제모임에서 많은 유명인과 신사 숙녀들이 참가한 가운데 연설을 했다”며 “이들은 만국평화회의에서 연설할 수 없었으나 유력한 인사들이 이들의 연설을 듣기를 기다렸다”고 전했다.
대한제국의 사정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외신과의 인터뷰도 이뤄졌다. 이들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임무가 “대한제국을 중립국으로 만들고 주권을 되찾는 것”이라고 밝힌다. 이어 자신들을 특사로 보낸 고종이 ‘마지막 황제의 전언’으로 “내가 살해당해도 나를 위해서 아무런 신경을 쓰지 마라. 너희는 특명을 다하라. 대한제국의 독립주권을 찾아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내용은 독일 신문 알게마이네 차이퉁이 헤이그 특사의 로이터 인터뷰를 기사에 실으면서 소개한 것으로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알게마이네 차이퉁은 “특사단은 (헤이그 살롱에서) 밤마다 대한제국을 네덜란드와 같은 중립국으로 만들고 대한제국의 독립주권을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며 논의에 불을 지폈다”며 “헤이그에서 그들의 임무가 실패했더라도 그들에 대해 뭐라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문은 “특히 대영제국·프랑스·독일·미국의 대표사절단은 한국의 상황에 깊은 동정심을 표했고 도움을 줄 것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고 교수는 “헤이그 특사가 실패했다는 게 일반적인 역사인식이지만 현실적으로 국제사회의 외교·군사적인 지원을 받기 힘들었던 상황에서 ‘살롱 외교’를 통해 상당한 홍보 성과를 거둔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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