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여러분들, 고객 상대하시면서 감정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으시죠? 스트레스가 쌓이면 혈관에 노폐물이 쌓여서 뇌혈관 질환이 발병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 건강기능식품을 준비해봤습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모씨는 지난해 회사에서 법정의무교육인 감정노동자보호교육을 받다가 희한한 경험을 했다. 감정노동의 스트레스 관리를 설명하던 강사가 갑자기 노폐물이 쌓인 혈관 사진을 보여주더니 가방에서 즙을 꺼내 들었다. 이후 20분가량 즙 얘기만 이어졌다. 김씨는 “나이 드신 직원들 중 일부는 혈관 사진에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즙을 구입했다”며 “감정노동 관련 교육인데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즙뿐이었다”고 말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근로자의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법정의무교육이 보험상품·신용카드·건기식·화장품 등을 홍보하는 ‘약장수’로 변질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법정의무교육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대로 강사를 초청하면 시간당 30만원 이상을 기업에서 내야 하는데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이 비용을 부담스러워 한다”며 “후원사가 끼어 있어 무료로 진행되는 법정의무교육을 신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법정의무교육이란 근로자 5인 이상의 기업이라면 매년 의무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교육을 뜻한다. 성희롱예방교육·개인정보보호교육·감정노동자보호교육·장애인인식개선교육 등이 해당된다. 온라인으로 교육을 수강하거나 대표의 주관 하에 자체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교육을 받지 않을 경우 사업주에 최대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보통 직원들의 온라인 수강 여부를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고 근무시간을 쪼개 온라인 강의를 듣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기업에서는 강사를 초청해 다같이 수강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이 같은 점을 노리고 상품을 홍보·판매하려는 회사를 껴서 법정의무교육을 무료로 제공하는 업체들이 성행하고 있다. 다른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원 박모씨는 “회사 공문에는 후원사 이름이 명시돼 있지만 수료증에는 그런 언급이 전혀 없었다”며 “수료증만 보면 상품 판매 시간 없이 오로지 관련 교육만 들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겠더라”고 언급했다.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에서도 이 같은 현실을 알고 있다. 다만 법적으로 단속할 조항이 없다는 입장이다. 고용부 측은 “행정안전부와 산업안전공단에서 무료로 법정의무교육을 들을 수 있는 사이트를 제공하고 있지만 기업체에서 온라인 수강을 선호하지 않는다”며 “상품 판매와 관련한 민원이 들어와 모니터링은 하고 있지만 단속할 법적 근거는 없다”고 주장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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