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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떠나는 세월호 천막…기억의 방법을 묻다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분향소 등 천막 14개동이 철거되고 있다. 천막 위치에는 목조 형태의 ‘기억·안전 전시공간’이 마련된다./서울경제DB




18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에 있던 세월호 추모 천막 14개 동이 철거됐습니다. 지난 2014년 7월 14일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며 추모 천막이 마련된 이래 4년 8개월만입니다.

당초 3개가 설치됐다가 이후 정부의 협조 요청에 따라 서울시가 11개를 추가로 설치해 모두 14개 동으로 늘었습니다.

유족들은 최근 천막 자진 철거 의사를 서울시에 밝혔습니다. 시민 모두의 공간인 광화문 촛불 광장을 시민에 돌려주겠다는 의미입니다.

세월호 천막이 있던 자리에는 기억 전시공간이 마련될 예정입니다.

“기억하자” vs “이제 그만 잊자”가 아닌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의 문제를 던진 세월호 천막 철거. 영상 속 내레이션을 옮겨싣습니다.





지난 8일, 광화문 광장.

#이현주(분향소 추모객)

“너무 슬픈 것 같아요. 자매로서 죽은 (피해자들의) 친구로서”

#최영춘·김윤옥(경북 경주 거주)

“난 경상북도 경주에 사는 사람인데 (세월호 분향소) 철거하기 전에 추모하려고 우리 내외가 (광화문에) 일부러 왔어요.”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천막이 사라집니다. 2014년 7월 14일,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 천막이 처음 들어선 이후 1700여일 만입니다.

#전인숙 (세월호 희생자 故 임경빈 학생 엄마)

“제일 처음부터 이 공간이 조성된 게 아니었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추운 날씨에도 비닐 하나로 지붕을 쌓아서 그 좁은 공간에서 다닥다닥 붙어서 손 호호 불면서 작업을 시작했던 시민들, 국민들이 모였던 광장이거든요.”

세월호를 기억하는 공간이 당장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를 추모하는 공간을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엔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등 과거 대형 참사를 기억하는 내용도 포함됩니다. 이를 두고는 찬반 의견이 엇갈립니다.

#김희라 (분향소 추모객)

“앞으로 이런 일이 똑같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우리가 계속 기억해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서 저는 기억교실, 추모 공간 조성이 계속 필요하다고 봐요.”

#심정윤(충남 홍성 거주)

“추모 공간이라고 한다면 모든 마음에 안 드는 정책들이 나올 때마다 다 여기 모여서 데모하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도 (납득할 수 있는) 추모 공간도 되어야 하겠죠.”

그동안 세월호 뿐만 아니라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등 다른 참사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성수대교 사고희생자 위령비 표지판


[1] 뚝섬역

희생자들을 기리는 위령비가 성수대교 근방에 있다는 얘길 듣고 찾아가보았습니다. 보이는 것은 ‘성수대교 참사 위령탑’ 위치 가리키는 표지판뿐. 관리인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일러주신 방향으로 꽤 오랜 시간을 걸었지만, 관리인이 묘사한 길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한용희(전북 군산 거주)

“(추모공간이) 있으면 한번씩 와서 쳐다보기도 하고 기억도 하고 그럴텐데, 보이는 자체가 없어지면 또 기억에서 많이 사라지지 않을까 그런 걱정도 있어요. 아이들한테도 얘기도 할 수 있을 텐데…”

[2] 교대역

삼풍 백화점이 있던 자리를 찾았습니다. 사고 현장엔 주상 복합 건물이 들어섰네요. 사고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삼풍백화점 참사 위령비가 인근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저희는 버스로 30분을 이동해 양재 시민의 숲에 도착했습니다. 위령비는 어디 있을까요? 위령비엔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꽃을 가져가지 말라는 경고 문구도 보입니다.

#김갑순(서울시 양재동 거주)

“(추모제) 그날만 사람들이 있지. 방문하는 사람들은 거의 못 봤어. (나야) 우리 동네니까 알지. (위령탑을 보러 오는 사람은) 거의 없어.”





삼풍백화점 위령비 옆에 또 다른 위령비가 보입니다. 우면산 산사태 피해자 위령비입니다. 7년 만에 세워진 위령비는 깎여나간 우면산을 형상화한 듯한 모습입니다. 방배동의 한 아파트. 산사태 피해 지역 중 한 곳입니다. 길 건너편 맨몸을 드러낸 산이 그날의 흔적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2010년 태풍 곤파스로 피해를 입었던 우면산. 그때를 교훈으로 삼지 못했다는 자조가 비석에 녹아 있습니다.

[3] 용산

이번엔 용산을 찾았습니다. 10년 전 남일당 건물에서 철거민들은 망루를 설치하고 농성을 벌였습니다. 이곳에는 현재 1100세대 규모의 주상 복합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공사현장 앞엔 여전히 참사의 기억을 안고 사는 유가족이 있었습니다.



#김영덕 (용산참사 피해자 故 양회성씨 부인)

“추모비가 있고 없고 다 떠나서 지금 이 시대 어린 사람들, 애들 아니고서야 잊겠어요? 안 잊지. 그렇지만 후손들을 위해서 이 자리가 이런 자리라는 걸 알리기 위해서는 그런 게 있으면 더 좋죠.”

[4]추모의 규칙

우리나라 추모 규칙엔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나, 눈에 띄지 말 것. 참사 현장을 기억하는 공간은 현장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성수대교 참사 위령탑은 도보로 접근이 불가능하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위령탑은 참사 현장과 약 3km거리가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우면산 산사태 추모비는 사고 지역으로부터 2.6km 떨어진 곳에, 용산 참사 추모비는 남양주시에 세워지는 등 접근성이 떨어졌습니다.

둘, 이제 그만 잊을 것.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아픈 공간이기보다 밝은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좀 더 밝은 공간으로 됐으면 좋겠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심용환 역사학자 겸 작가 (역사N교육연구소장)

(왜 사람들은 고통 받은 기억을 잊으려 할까요?) “하나는 경제논리라고 생각해요. 이곳이 금싸라기 땅이고 거기다 재수 없는 납골당 같은 거 해놓으면 땅값 떨어진다라는 정말 무시무시한 경제 논리인거죠……두 번째는 정치 논리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문제가 사고가 아니라 정권과의 각, 이런 게 들어가니 그 사건을 애도하지만 기억하지 맙시다, 는 태도를 만든 것 같아요.”

추모 시설에 대한 정치화된 시선, 경제 논리와의 지난한 싸움. 아픔을 고백하는 것이 금지된 우리나라는 “이제 그만 잊자”고 얘기합니다.



#심용환 작가

“슬프고 아픈 일은 더 기억해주고 슬프고 아픈 일을 당한 사람을 보듬어주는 게 인지상정이라 생각해요. 같이 아파해줄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적인 기억의 장소를 만들어서 그 장소에서 마주할 때 상기할 수 있잖아요.” “기억의 장소를 만드는 것은 성수대교부터 세월호까지 과거의 것들에 대해서도 기억을 치유하는 기능도 있겠지만 미래를 대비하는 과정이라 생각해요.”

해외에서는 재난과 참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광화문 광장과 비슷한 독일 베를린 파리저 광장. 독일의 수도 중심부에 2,711개의 관 조형물이 있습니다. 축구장 3개 크기 규모입니다. 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유대인 대학살 홀로코스트 피해자를 추모하는 공원입니다.

미국 뉴욕 맨해튼 중심에도 추모 시설이 있습니다. 9.11 테러 희생자들을 기리는 시설인 ‘그라운드 제로’입니다. 110층 세계무역센터 빌딩 두 동이 무너져내린 그곳에 테러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모두 도심 한 가운데, 눈에 띄는 곳에 공간을 마련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

(삼풍백화점 추모비 같은 데 다 가봤는데...) “사실 그런 건 다 잘못된 거죠. 아파트를 건립할 때 한국사회가 기억에 관심이 있는 사회라면 거기에 그런 걸(추모 시설) 만들어놨어야 하겠죠. 거기 사는 사람들은 아파트값 떨어진다고 좋아하지 않겠죠. 독일도 마찬가지예요. 유대인들이 살았던 집앞에 그 사람 이름이 새겨진 동판이 조그맣게 있는데...기분이 나쁘잖아요. 집 소유자들이 그거 설치하지 말라고 그러고…”

또 최근에는 공간이나 비석 따위가 없더라도 시민들이 때가 되면 그 현장을 자발적으로 찾아 촛불을 켜고 국화를 바치거나 포스트잇을 붙이고,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는 등 추모의 문화도 다양해졌습니다.



희생자의 이름을 새긴 비석 앞에는 그들의 생일 때마다 꽃 한 송이가 놓여집니다. 미국 정부는 테러 희생자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작업을 18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아픈 역사를 지우기보다는 애써 기억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우리나라엔 없는 0000, 그건 바로 ‘기억 공간’입니다. 우리는 항상 기억과 망각 사이 갈등이 항상 끊이지 않고 있죠. 광화문 광장 세월호 천막 철거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기억하느냐 마느냐가 아닌, 어떻게 기억하고 추모하느냐 아닐까요?

#임지현 교수

“기억이라는 건 훨씬 복잡하고, 오히려 세월호에 대해 잘 쓰여진 보고서 같은 게 사회적으로 회람이 되거나 그런 보고서가 예컨대 국어 교과서 같은 데 실려서 학생들이 읽는 게 광화문에 전시관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단지 공간을 조성하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기억할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에서도 밀려난 우리나라의 기억 공간들. 유가족들만의 임무로 변질되어 버린 참사 피해자들의 추모. 이제는 우리가 보다 책임 있는 기억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정선은·박원희 인턴기자 jsez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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