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정부의 난민정책에 불만을 품은 스쿨버스 운전사가 학생·교사 51명을 납치해 버스에 불을 지른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학생과 경찰의 발 빠른 대처로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경찰은 테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조사에 나섰다.
20일(현지시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이탈리아 북부 크레모나의 한 중학교 학생 51명을 태운 스쿨버스가 밀라노 동남부 외곽의 도로에서 불길에 휩싸여 차량이 완전히 불에 탔다. 경찰은 아프리카 세네갈 출신인 47세의 스쿨버스의 운전사가 정부의 강경 난민정책에 불만을 품고, 학생들을 납치한 뒤 버스에 불을 질러 이들을 살해하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40여 분에 걸친 이날 납치·방화극은 범인이 12세 안팎으로 알려진 탑승 어린이들을 학교로 데려다주는 대신에 차량을 밀라노 쪽으로 돌리면서 시작됐다. 우세이누 사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범인은 휘발유와 라이터로 학생들을 위협하면서 이들 모두의 손을 묶고 “아무도 살아서 내리지 못할 것”이라고 위협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납치극은 한 학생의 기지 덕분에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았다. 범인이 학생들의 휴대폰을 전부 압수했으나, 한 학생이 휴대폰을 은밀히 바닥에 떨어뜨린 뒤 결박을 풀고 가까스로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함으로써 범인의 끔찍한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버스와 추격전을 벌인 끝에 밀라노 외곽에서 버스를 저지하는 데 성공했고, 모두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경찰을 따돌리려는 와중에 다른 차량을 들이받기도 한 버스가 경찰이 설치한 차단막에 막혀 멈추자 운전자는 차에서 내린 뒤 미리 인화성 물질이 뿌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버스에 불을 붙였다. 경찰은 재빨리 차량 뒤편의 유리창을 깨고 버스에 타고 있던 어린이들을 밖으로 탈출시켰고, 불이 버스를 집어삼키기 전에 탑승객 전원에 대한 구출을 완료했다. 이들 어린이 가운데 23명은 연기 흡입, 타박상, 정신적인 충격 등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음주운전과 성범죄 전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된 뒤 경찰에 “지중해에서 일어나고 있는 (난민) 죽음을 멈춰야 한다”고 외친 것으로 전해졌다. 지중해를 건너 들어오는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항구를 봉쇄하는 등 강경 난민 정책을 펼치는 정부 정책에 대한 반발로 이번 일을 저질렀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한편 이탈리아는 작년 6월 서유럽 최초의 포퓰리즘 정부 출범 이후 반(反)난민, 반이슬람을 강조하는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 주도로 지중해에서 구조된 아프리카 난민들에게 자국 항구를 봉쇄하는 등 강경 난민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영향으로 올해 들어 현재까지 이탈리아에 들어온 난민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94% 급감하는 등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로 들어오는 난민 수는 최근 급감했다.
하지만 인권단체와 난민 구조단체는 이탈리아의 이런 정책 때문에 지중해에서 사망하거나, 인권 침해가 자행되고 있는 리비아로 송환되는 난민이 늘고 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4년부터 작년까지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에 도착한 아프리카·중동 등지의 난민은 약 65만 명에 달한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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