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한 민간인 희생자에 대해 71년 만에 재판을 다시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당시 군과 사법경찰관들이 피고인들을 불법으로 체포·감금했다는 이유다. 재심은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진행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내란죄, 국권문란죄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장모씨 등 3명의 재심 청구 사건에 대한 재항고심에서 재심개시를 결정한 원심 결정을 그대로 확정했다.
1948년 10월 전남 여수 14연대 소속 군인 2,000여 명이 제주 4·3 사건 진압을 위한 출항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켜 여수와 순천 지역을 점령하자 정부는 진압군을 조직해 해당 지역을 바로 탈환했다. 이후 국군과 경찰은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명목으로 민간인을 무차별적으로 연행, 일부는 재판도 없이 총살하고 나머지는 군법회의 등에 회부했다. 철도국 소속 기관사였던 전남 순천 시민 장(당시 28세)씨는 당시 출근길에 순천역 앞 광장에서 연행돼 다음 달 야산에서 총살됐다. 다른 피해자인 신모(당시 31세)씨와 이모(당시 21세)씨도 비슷한 시기 마을에서 붙잡혀 총살 당했다.
이후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여순 사건을 재조명하면서 “군과 경찰이 438명의 순천지역 민간인을 내란 혐의로 무리하게 연행해 살해했다”는 결론을 냈다. 이에 장씨 유족 등은 2013년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1심인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당시 경찰관들의 불법 체포·감금은 제헌헌법과 옛 형사소송법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2심인 광주고법도 1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검찰은 “유족 주장만으로 불법 수사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재항고했지만 대법원 역시 하급심과 결론은 같았다. 김명수 대법원장 등 다수의견을 낸 9명은 “형사재판에서 심증 형성은 반드시 직접 증거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간접증거로도 할 수도 있다”며 “당시 군경이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없이 불법 체포·감금했다고 인정한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다만 조희대·이동원·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조희대·이동원 대법관은 “확정 판결을 대신할 증명이 없다”고 지적했고 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재판이 실제로 있었는지, 피고인들이 사형 집행으로 사망한 것인지도 의문”이라며 “공소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형사재판도 불가능하고 재심도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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