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신흥시장 급락 당시 진원지로 지목됐던 터키 금융시장이 최근 다시 요동치는 가운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막무가내식 처방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달 3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외환시장 안정을 목표로 무리한 유동성 차단정책을 밀어붙인 결과 역효과가 초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총리 3선, 대통령 재선으로 무려 30년 장기집권의 길을 연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방선거에서 확실한 승리를 거두고 무소불위의 ‘21세기 술탄’으로 거듭나기 위해 외환시장을 볼모로 삼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현지시간) 터키리라화를 해외에서 차입할 때 적용되는 오버나이트 스와프 금리는 무려 1,200% 급등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20% 초반에 불과했던 금리가 지난 2001년 이후 최고치를 찍으며 차입 비용이 상상도 못할 수준까지 치솟은 것이다. 리라화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워지자 투자자들은 이날 리라화 대신 터키 주식과 채권을 부랴부랴 팔아치웠다.
이날 오버나이트 스와프 금리가 폭등한 것은 무리한 정부 개입 때문이었다. 투자자들은 22일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가 7% 급락하자 금융당국이 재발을 막기 위해 시장에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주 말 유세에서 22일 리라화 폭락이 외국인의 조작 때문이라며 날을 세웠고 터키 은행감독청(BRSA)은 JP모건 등 해외 금융회사 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투자자들은 터키 금융당국이 자국 은행들에 외국인과의 리라화 거래를 중단하라고 압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면서 “금융당국의 조치 이후 리라화가 단기적으로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터키 은행연합회는 “은행들은 이번 사태와 관련이 없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정부 개입으로 리라화 가치의 추가 급락은 일단 막았지만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은 마비됐다. 터키 대표 주가지수인 보르사이스탄불100지수는 이날 전 거래일 대비 5.67% 급락해 2016년 7월 이후 일일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국채 가격이 급락하면서 지난주 초 7%였던 달러 표시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이날 장중 7.63%까지 치솟았다. 채권 부도 위험에 비례하는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는 일주일 전과 비교해 100bp(1bp=0.01%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오버나이트 금리가 폭등해 투자자들이 리라화 대신 다른 터키 자산을 팔아 현금화한 결과 주식과 채권 가격이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처럼 무리한 금융정책을 밀어붙이는 데는 지난해부터 악화하는 터키의 경제사정도 한몫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터키는 지난해 리라화 폭락사태가 벌어진 직후인 8월 자국 은행들에 외국 투자가와의 스와프 거래를 은행 자본의 50%로 제한했다. 또 7월 물가상승률이 연율 15.85%로 14년 만에 최고를 찍는 등 인플레이션이 극심해지자 10월 정책금리인 1주일 레포금리를 17.75%에서 24%로 대폭 끌어올렸다. 이러한 극약 처방에도 터키의 경제성장률은 3·4분기 -1.6%(전 분기 대비), 4·4분기 -2.4%로 2분기 연속 역성장하며 침체에 빠진 상태다.
하지만 반복되는 에르도안식 강압 처방은 악순환만 초래한다는 우려가 시장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금융기업 XTB의 수석연구원인 데이비드 치탐은 “터키에 가혹한 이야기지만 시장과의 싸움은 거의 눈물로 끝난다”면서 “중요한 지방선거를 앞두고 통화가치 방어에 성공하는 듯 보여도 결국 또 다른 리라화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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