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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주희의 똑똑!일본]100년 김 가게가 라떼를 파는 이유

②변화 맞선 츠키지 상인들의 도전

시장 이전후 자리 남은 장외 상점들

"고객 유인" 새로운 아이디어 잇따라

'관리방법 비슷' 茶카페 만든 김가게

명란 파스타 만들어 파는 어란 상점

쓰키지 시장 이전 후에도 다양한 음식점과 식품 판매점으로 구성된 장외 시장에는 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송주희 기자




많은 이들이 ‘도쿄의 부엌’ 하면 여전히 쓰키지(築地) 시장을 떠올린다. 한국의 노량진 수산시장 격인 쓰키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중앙 도매시장으로 각종 해산물·가공식품류 판매상부터 특색 있는 식당이 밀집한 곳이었다. 1935년 개장한 이래 세계 식도락들의 필수 방문지로 꼽히던 이곳은 그러나 시설 노후화로 인해 지난해 10월 2km 떨어진 도요스(豊洲)로 이전했다.

시장은 자리를 옮겼지만, 원래의 터전에 남은 곳들도 있다. 400여 곳의 음식점과 소매상들이 밀집한 ‘장외시장’이다. 이 장외시장은 독특한 메뉴로 특화된 작은 점포들이 모여 관광객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어 시장 이전의 타격이 그리 크지는 않은 편이다. 그러나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음식점이 아닌 식자재 판매상들은 매출 감소를 피할 수 없었다. 매출 감소를 떠나 기존 터에 남은 장외 시장으로 고객의 발길을 이끌 유인책도 마련해야 했다.

100년째 대를 이어 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토 김 상점(왼쪽)과 이 가게가 인근에 새로 문을 연 차(茶) 전문 카페/송주희기자


몇몇 점포들의 ‘이유 있는 변신’은 그렇게 시작됐다. 100년 된 한 김 전문점은 지난해 말 장외시장 점포 인근에 일본 차(茶) 전문점을 열었다. 좌석 없이 일본 차와 관련 도구를 판매한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말차(抹茶) 라떼. 계산대에서 500엔을 내면 점원이 우유가 담긴 일회용 플라스틱 컵을 건넨다. 이 컵을 가지고 가게 밖에 줄을 서면 직원이 차 도구를 이용해 말차를 제조해 컵에 부어준다. 즉석에서 말차를 만드는 모습은 외국인, 특히 서양 관광객들에게 신기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가게 앞은 말차 라떼 만드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외국인으로 장사진이다. 4대째 가업을 이어받은 이토신고(伊藤信吾)씨는 오래전부터 김 업자들이 관리와 보관이 비슷한 차를 함께 취급해온 점에 착안해 ‘스탠딩 차 전문점’을 떠올렸다고.

카페 직원이 차 도구로 말차라떼를 만들고 있다./송주희기자




2대째 운영 중인 한 어란(魚卵) 전문점도 새로운 시도로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일반 고객보다는 중개상과의 거래가 많은 식료품점인 만큼 시장 이전에 따른 타격도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시장 이전이 논의되던 2017년 일찌감치 판매대 옆에 식사 공간을 열고 어란이 들어간 덮밥을 함께 팔아왔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어란 파스타 신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연어와 연어 알이 함께 들어간 ‘오야코 파스타’, 명란젓을 이용한 ‘명란 파스타’ 등이다. 이들 메뉴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 각종 음식, 물건, 장소 등의 사진을 올리는 ‘인스타바에(インスタ映え)’ 문화와 맞물려 인기를 끌고 있다.

츠키지 장외시장의 어란 전문점은 손님 유치를 위해 기존 어란 판매대 옆에 식사 공간을 만들어 어란을 활용한 파스타, 덮밥 등의 메뉴를 내놓고 있다./송주희기자


이런 시도의 효과가 오래갈 수 있을지, 한때의 인기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음식마저도 옷과 노래처럼 짧은 순간 주목받고는 이내 사라지는 게 요즘의 유행이라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거친 시장판에서 대를 이어 살아남은 이들의 생존 DNA가 남달랐음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위기 앞에서 발 빠르게 소비자의 수요를 읽고 차별화되는 구매 포인트를 만들어내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이들의 노력은 단순히 시류를 좇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가져온 고민이 반영돼 있기 때문에 더욱 빛난다. 김 가게의 사장은 평소 김 전문가로 활동하면서도 함께 취급해 오던 일본 차를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쉽고 친숙하게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왔다고 한다. 어란 가게 사장 역시 파스타 전문점에 가서 직접 제조법을 배워올 만큼 열정을 보였다.

언젠가 ‘태극당 집 손주’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1946년 명동에 문을 연 서울 최초의 빵집 태극당. 창업주의 장손인 30대 전무이사가 가업을 이어받아 시도한 다양한 실험을 소개한 글이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경쟁자와 시시때때로 변하는 상권과 유행 속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의 성공은 아들 세대에게 마냥 영광이자 든든한 배경일 수는 없었다. 힙합 브랜드와의 협업, 서점 내 카페 운영 같은 결과물을 위해 ‘패션에 관심 많던’ 빵집 손주는 얼마나 많은 고뇌에 빠졌을까.

한국의 태극당도 일본의 김 가게·어란 가게도 마찬가지다. ‘전통을 지키며 새 옷을 입는다’는 게 말처럼 쉬우랴. 깊은 고민과 실험으로 오늘도 힘차게 상점문을 열 이들의 어깨가 더욱 빛나 보인다.
/도쿄=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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