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으로 기록되는 강원도 고성 산불이 ‘안전 시스템 예산’을 제대로 투자하지 않고 등한시한 결과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부가 탈원전으로 귀결되는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면서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과 발전 자회사들의 안전시설 투자 여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에 더해 복지예산을 쏟아내고 있는 지자체들이 안전에 대한 투자는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5일 고성 산불의 원인은 한국전력이 관리하는 전신주 개폐기에 연결된 전선에서 불꽃이 튄 것으로 잠정 확인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소방당국의 정밀조사 결과가 나와봐야겠지만 당장 한전의 관리부실 가능성이 제기된다. ★관련기사 2·14면
한전 관계자는 “화재 시작점으로 알려진 고성군 원암리 주유소 건너편 전봇대에 설치된 개폐기와 연결된 전선에서 아크(전기불꽃)가 발생한 것으로 잠정 추정된다”고 말했다. 개폐기는 가정집의 누전차단기(일명 두꺼비집)처럼 전기사고가 발생했을 때 전력을 차단하는 스위치로 한전이 관리한다. 전기안전 관련 전문가는 “개폐기 등 전기 설비에는 2만2,900V의 특고압이 흘러 들어가기 때문에 관리가 허술하면 충분히 사고가 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강원 지역에 전신주를 땅속에 설치하는 지중화(地中化) 비중을 높였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중화 개폐기의 대당 가격이 2,000만~3,000만원에 달하는데다 굴착공사 비용 부담도 커 시설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한전을 비롯한 발전자회사의 지난해 투자집행 규모는 10조251억원으로 2015년의 10조4,914억원에서 4.5% 감소했다. 이마저도 탈원전 정책에 따른 재생에너지 설비 확충에 대부분이 투입돼 단기간에 안전 설비를 확충하기는 쉽지 않다. 신속한 산불 진화를 위해서는 초대형 산불 헬기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지만 복지 분야에 재정을 집중 투입한 지자체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외면하는 실정이다. 무상급식·무상교복 등 복지예산에 지출이 큰 탓이다. 산림청도 산불 헬기를 고작 4대만 보유하고 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안전을 생각한다면 전선 지중화가 이상적”이라며 “비용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대전=박희윤기자 변재현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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