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정부가 국제형사재판소(ICC) 가입 의사를 한 달 만에 철회했다.
8일 말레이메일에 따르면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지난 5일(현지시간) ICC에 관한 로마 규정을 비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초 로마 규정에 서명한 지 한 달 만이다.
마하티르 총리는 “(ICC 가입에)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가입 후 기득권 세력에 의한 정치적 혼란이 뒤따를 것이라는 우려로 이번 결정을 내렸다”면서 “이는(정치적 혼란은) 내 이름을 더럽히기 위한 방법일 것이다. 그들은 나를 쉽게 몰아내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로마 규정은 ICC의 관할권을 인정하기 위한 다자조약으로 정식 명칭은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이다. ICC는 집단살해, 전쟁, 반인도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재판하며 국가 및 단체는 재판 대상에서 제외된다. 지난달 18일 현재까지 122개국이 로마 규정에 가입했고 미국·중국·러시아·인도는 미가입국이다.
마하티르 정부가 한 달 만에 ICC 가입 의사를 번복한 것은 국민의 61%에 달하는 이슬람계와 야권의 반발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는 13개 주로 구성된 연방제 국가로 이 중 9개 주에 술탄(이슬람 통치자)이 존재한다. 이들은 말레이시아가 ICC에 가입할 경우 자신들의 면책특권이 박탈될 수 있다고 반발해왔다. 싱가포르 스트레이츠타임스는 “야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과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은 ICC가 술탄의 권력을 침해하고 나라의 통치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비준에 반대해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5월 연합 희망연대(PH)의 총선 승리를 이끌며 61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마하티르 총리는 취임 이후 종교 및 인종차별 축소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번번이 이슬람계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이슬람계와 야권이 인종·피부색·가문·민족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유엔 인종차별철폐협약(ICERD) 가입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어 비준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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