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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번홀 악연 끊은 고진영, 우승 인연 이었다

[고진영, 한국인 5대 '호수의 여왕' 등극]

첫 메이저 16번홀 더블보기 악몽

4년후 16번홀 '쐐기버디'로 떨쳐

"그때 실패가 성장의 계기 됐다"

시즌 첫 메이저서 3타차 압승

통산 4승...세계랭킹 1위 예상

고진영(가운데)이 8일 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우승한 뒤 대회 전통에 따라 18번홀 그린 옆 ‘포피스 폰드’로 캐디 데이비드 브루커(왼쪽), 에이전트 최수진씨와 함께 뛰어들고 있다. /랜초미라지=AFP연합뉴스




고진영이 8일 ANA 인스퍼레이션 우승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랜초미라지=USA투데이연합뉴스


고진영이 8일 ANA 인스퍼레이션 4라운드 마지막 홀을 버디로 마무리한 뒤 감격하고 있다. /랜초미라지=USA투데이연합뉴스




고진영(24·하이트진로)이 해외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처음 출전한 것은 지난 2015년이었다. 당시 스무 살의 고진영은 스코틀랜드에서 열렸던 메이저대회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 초청선수로 참가해 우승 눈앞까지 달려갔다. 승부처인 16번홀(파4)만 잘 넘겼다면 일찌감치 역사를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홀에서 더블보기를 범해 박인비에게 역전 우승을 내줬다. 준우승한 고진영은 한동안 눈물을 참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 뒤 그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그때 실패가 엄청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그 대회를 통해 LPGA 투어 도전을 결심했다”고 했다.

고진영은 8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CC(파72) 마지막 홀에서도 많이 울었다. 4m 버디 퍼트를 넣어 생애 첫 LPGA 투어 메이저대회 우승이 확정되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감격했다. 앞서 2타 차 선두로 그린으로 이동하면서 갤러리들과 손뼉을 마주칠 때만 해도 예상하지 못했던 눈물은 마지막 일흔두 번째 홀 속으로 볼이 사라지는 순간 왈칵 쏟아졌다.



시즌 첫 메이저 ANA 인스퍼레이션(총상금 300만달러) 우승으로 고진영은 한국인 5대 ‘호수의 여왕’이 됐다. 2004년 박지은, 2012년 유선영, 2013년 박인비, 2017년 유소연에 이어 다섯 번째로 그린 옆 ‘포피스 폰드’에 풍덩 몸을 던졌다. 우승상금 45만달러(약 5억1,200만원)를 보태 시즌 상금 100만달러를 가장 먼저 돌파했고 통산 4승째로 상금도 200만달러를 넘어섰다. 올 시즌 6개 출전 대회에서 벌써 2승을 챙긴 고진영은 시즌 첫 다승자로 주요 부문 선두 자리를 모두 차지했다. 상금과 올해의 선수 포인트에서는 2위와 격차를 더 벌렸고 평균타수는 3위에서 1위(68.75타)로 올라섰다. 세계랭킹 또한 5위에서 1위로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신지애·박인비·유소연·박성현에 이어 세계 1위에 오르는 다섯 번째 한국 선수가 되는 것이다. 오는 2020년 도쿄올림픽 참가라는 오랜 꿈에도 성큼 다가서게 된다. 한국은 이변이 없는 한 세계랭킹 상위 4명이 올림픽에 나간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4라운드를 출발한 고진영은 버디 5개와 보기 3개로 2타를 줄여 최종합계 10언더파 278타로 우승했다. 7언더파 2위 이미향(26·볼빅)을 3타 차로 따돌렸다. 3~4m 버디 퍼트를 잘도 넣어 순항하던 고진영은 15번홀(파4) 보기로 위기를 맞았다. 앞 조 이미향에게 1타 차로 쫓기면서 알 수 없는 흐름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고진영은 바로 다음인 16번홀(파4) 버디로 만회했다. 내리막 왼쪽 경사의 까다로운 3m 퍼트를 놓치지 않았다. ‘16’은 4년 전 고진영에게 악몽의 번호였는데 이날은 우승으로 안내하는 약속의 번호가 됐다.

고진영은 자기 플레이에만 집중했다. 17번홀(파3) 티샷을 준비하던 그는 앞 조 이미향의 그린 주변 어프로치 샷이 시야에 들어왔지만 고개를 숙여 일부러 보지 않았다. 이 홀을 파로 막아 우승을 예약한 고진영은 이미향이 파로 마친 18번홀(파5)을 버디로 마무리했다. 이 대회에 세 차례 나와 지난해 공동 64위 등으로 매번 부진했지만 네 번째는 우승이었다. 고진영은 “16번홀 버디를 하고 우승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끝나고 나니 우승이 믿기지 않는다”며 “한 주 휴식기 동안 골프에 대한 열정을 더 끌어올려 롯데 챔피언십(4월17일부터 하와이)에 나가겠다”고 했다. 경기를 마치는 순간 1년 전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더 많이 났다고 한다.

캐디 데이비드 브루커(잉글랜드)도 화제다. 1997년부터 이 대회에 열여섯 번이나 캐디로 참가한 브루커는 2004년 박지은, 2008년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의 우승을 도왔다. 고진영은 ‘풍덩 세리머니’가 처음이었지만 브루커는 벌써 세 번째다. 고진영은 박지은의 소개로 올 시즌부터 브루커와 호흡을 맞추고 있는데 6개 대회에서 두 번씩의 우승과 준우승에 3위 한 번으로 거의 매 대회 우승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 군단은 8개 대회에서 5승을 합작하며 초강세를 이어갔다. 이날 우승 경쟁도 경기 중반부터 이미 한국 선수끼리의 다툼으로 압축됐다. 7언더파 2위 이미향에 이어 김인경이 5언더파 공동 4위, 김효주와 ‘핫식스’ 이정은은 4언더파 공동 6위에 올랐다. 박성현은 6타를 잃고 4오버파 공동 52위로 주춤했다. 상금왕, 올해의 선수상, 최소타수상과 신인상을 한국 선수가 모두 휩쓰는 시나리오도 탄력을 받고 있다. 신인상 포인트는 이정은이 2위 선수에게 100점 이상 앞서 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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