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이 당초 계획보다 1년 빨리 고교 무상교육의 포문을 여는데 성공했으나 지속적인 재원 마련 방안은 내놓지 못해 실제 시행에는 난관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관련 예산을 지방 교육감의 협조에 의존할 수 밖에 없어 다음 교육감 선거 이후인 3년 뒤를 보장할 수 없고 2024년 이후의 조달 계획도 전무해 ‘5년짜리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관련 법 개정 과정에서 야권의 반발도 예상돼 결국 또 하나의 ‘무상 대란’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9일 당정청이 내놓은 ‘고교 무상교육 실현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부득이한 수요가 발생할 때 국가 예산에서 별도로 교부하는 ‘증액 교부금’으로 신규 재원의 40%(2021년 기준)로 활용하게 했다. 이로써 일부 교부금 증액은 이뤄진 셈이지만 안정적 재원에는 못 미친다는 게 교육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되레 지방교육재정 교부금률을 현행 내국세의 20.46%에서 증액해야 한다는 교육 당국의 요구에 대해 예산 당국이 재정 여건을 고려, 한시적으로 짜낸 임시 방편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런 과정에서 예산 전액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 의존하는 17개 시도 교육청들은 전체 무상교육 재원의 약 50%를 담당하면서 이중 20.5%를 신규로 짜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액 교육청 부담인 올해는 세계잉여금이 11년 최대치로 발생해 기존 재원을 허물지 않아도 재원 충당이 가능하다. 세계잉여금이란 지난해 예상보다 세수가 많이 걷힌 데 따른 결산상 잉여금을 교부금률에 따라 각 교육청에 배분한 것으로 누리과정으로 인한 기채 상환 외 고교 무상교육 재원으로 활용하게 된다. 하지만 고교 무상교육에 따른 신규 추가 재원이 내년 1조원, 후년 1조3,000억원 내외로 예상돼 살림살이가 팍팍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익명을 요구한 교육 당국의 한 관계자는 “세수 악화로 각 부처의 재량 지출도 줄어들 것으로 보여 기타 교육 예산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을 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교육감들의 협의체인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도 이날 고교무상교육과 관련한 의견 수렴에 들어가겠다고 밝혀 관심을 모은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관계자는 이날 “의견수렴을 거쳐 이르면 내일(10일) 오후 중 입장문이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 전망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는 점도 정책의 지속성에 의문을 더한다. 정부의 일자리ㆍ복지 예산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기존 정부 지출 삭감으로 조달하는 데 한계가 있는데다 경기둔화에 따라 세입여건은 점점 힘들어질 수 밖에 없어 앞으로 무상교육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증세 논란이 불가피할 수 있다. 정부의 의무지출 비중도 올해 51.4%에서 더 높아지게 됐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성장에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닌 경직성 지출을 늘리는 부분이 꼭 필요한지 재점검을 해야 할 타이밍”이라며 “저성장 고령화 사회에서 자칫 미래 세대에 너무 큰 부담을 지울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정부 때인 2025년부터의 재원계획이 없는 점도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을 더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국가 재정이 계속 투입될지 비율이 낮아질지는 그때 가서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예산의 상당 부분을 교육청과의 협의에 의존하게 되면서 3년 뒤 교육감 선거 결과에 따라 정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교육 예산 자체가 교육감의 재량권 아래 있기에 이번 방안은 시도 교육청의 협조가 없다면 파행으로 치닫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17개 시도교육청의 정치적 이해 관계가 엇갈릴 경우 지난 2016년 누리과정 사태와 같은 또 다른 ‘무상 대란’을 부를 수 있다는 얘기다. 입법 과정에서의 야당의 공세도 관건이다. 증액 교부금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등을 손질해야 하는데 앞서 야권은 내년 총선용 ‘선심성 공약’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한 바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고교 무상교육 실시에 찬성한다”면서도 “재원 마련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희원기자, 세종=황정원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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