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보고 할아버지가 웃었다.
“기뻐요를 잘못 썼구나!”
가족들도 막 웃자 어린 손녀는 창피했는지 다리를 배배 꼬았다. 그러는 모습이 슬아 어릴 적과 많이 닮았다고, 할아버지는 말했다. 나도 어렸을 때 부끄럽기만 하면 다리를 배배 꼬았댔다. 나는 어린 사촌동생을 한 번 껴안아봤다. 기쁘다는 말을 깊다고 잘못 쓴 그애한테서는 아기 냄새가 났다. 나도 할아버지가 있어서 깊다고, 사랑도 미움도 연민도 재미도 여러모로 깊다고, 미래의 어느 날 걔한테 말해주고 싶었다. (이슬아, ‘일간 이슬아’ 2019년 4월호, ‘당신이 있어서 깊어요’ 편)
한 달 구독료 만원을 보내면 e메일로 매일 글을 보내주는 작가가 있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시작한 ‘일간 이슬아’ 프로젝트로 작가는 진작에 학자금을 다 갚았을 뿐 아니라 구독자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팍팍하고 우울한 뉴스들이 일상을 위협하는 이 시대에 ‘일간 이슬아’는 한 사람의 하루와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감동적인 ‘사람뉴스’다. 깊은 밤 편지처럼 배달되는 ‘일간 이슬아’를 읽으면 별 볼 일 없던 나의 하루도 조금 더 깊어진다.
‘당신이 있어서 깊어요.’ 어린아이의 이 수줍은 사랑 고백은 사실 틀린 문장이다. ‘기뻐요’를 ‘깊어요’로 잘못 쓴 문장에서는 아기 냄새가 난다. 그러나 사람살이에서 옳고 어른스럽고 똑 부러지는 것이 언제나 정답은 아닐 것이다. 몇 해 전 드라마 ‘김과장’에서 이런 대사가 흘러나와 직장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사람이 사람한테 숨 쉬게 해주는 거, 그게 좋은 상사거든.”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전쟁통 같은 사회에서 나를 숨 쉬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 나아가 가까이 알고 지낼수록 내 모든 것이 더 깊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 당신 곁에 있는가. 아니, 당신은 주변 사람들이 기꺼이 ‘당신이 있어서 깊어요’라고 말해줄 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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