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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세편살] 21세기의 신인류 '호모딴짓엔스'

“딴짓 좀 하지 마”

우리는 이런 말을 꽤 많이, 자주 들으며 자랐습니다. 사전은 ‘딴짓’을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때에 그 일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야만 ‘딴짓’이라는 행위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어른이 돼서도 딴짓은 계속됩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직장인의 97.4%가 업무시간에 ‘딴짓’을 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스웨덴의 사회학자 롤란드 폴센은 이러한 근무시간 중의 딴짓을 ‘공허노동(Empty Labor)’이라고 이름 붙이기까지 했습니다.

■딴짓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딴짓하는 걸까요? 위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5%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딴짓을 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일부(39%)는 업무 중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딴짓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뇌에는 ‘흑질’이라는 기관이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흑질에서는 새로운 정보나 자극이 입력되는 순간 도파민을 분비시킵니다. 뇌신경 세포의 흥분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효과를 느끼는 거죠. 따라서 딴짓은 강한 내적 쾌감을 안겨주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의 근원이 된다고 합니다.

부정적으로만 인식하던 ‘딴짓’이 주목 받으면서 관련 책도 늘었습니다. 서점에서는 <딴짓의 힘>, <딴짓의 재발견>, <청춘에게 딴짓을 권한다> 등 딴짓을 장려하는 책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대놓고 “딴짓하자”고 외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은 딴짓과 일상의 경계에서 균형을 맞추거나 아예 딴짓으로 인생의 방향키를 틀어버리기도 합니다. 자신만의 딴짓을 꾸준히 해나가며 비즈니스의 기회를 찾아 창업하는 사례도 나옵니다.

딴짓공작소‘는 3명의 친구가 아지트로 시작해 현재는 광주 시민의 공간이 된 취미공유플랫폼입니다. 다양한 문화 활동이 이곳에서 진행된다고 합니다./딴짓공작소 제공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로 DIY인테리어 소품을 제작하기도 한다고 하네요./딴짓공작소 제공


■지역 커뮤니티로 자리 잡은 ‘딴짓 공작소’

광주에 살고 있는 평범한 회사원 심민호(34)씨. 그는 친구들과 우연한 계기로 자신들만의 아지트를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합니다. 모임의 주제는 ‘딴짓’. 평소 피규어를 좋아해 월급을 받으면 피규어를 샀는데 이러한 취향과 취미를 나누는 자리로 ‘딴짓공작소’를 차렸습니다. 처음에는 레고, 여행, 사진 등 친구들끼리 취미를 공유하는 자리에 불과했지만 체험 문화가 적은 광주를 대상으로 딴짓을 확장하게 됐습니다.

현재 ‘딴짓공작소’는 다른 청년이나 지역 주민들의 커뮤니티 모임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됩니다. 연령대가 있는 지역 주민분들은 함께 영화를 보거나 요리 모임을 갖고 청년들은 보드게임을 하거나 옹기종기 모여 만화책을 함께 본다고 하네요. 가격대가 비싼 만화책을 나눠서 같이 보고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밖에서는 ‘괜한 딴짓한다’고 핀잔 받을 일들이 이곳에선 ‘재미나고 유쾌한 딴짓’이 됩니다.

딴짓공작소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재미, 행복 나아가 만족감을 찾을 수 있는 모든 행동이 바로 ‘딴짓’이라고 말합니다. 딴짓공작소는 남들과 다른 것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개성 있고’ ‘다양한 경험을 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과거에는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없더라도 본인이 맡은 일을 수행하고 남보다 좋은 성과를 이끌어내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다”고 심민호 씨는 말합니다. 이제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나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찾고, 나만의 개성이 되고 나아가 장점이 되는 딴짓을 계속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원지현씨는 세계 각지에서 모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EDM 요가 수업을 엽니다. 장소는 푸른 나무가 가득한 공원이 되기도 하고 모래사장의 해변이 되기도 합니다/원지현씨 제공


수업을 하고 있는 지현 씨의 모습입니다./원지현씨 제공


■“노후 걱정 없냐고요? 나중에 후회할 노후가 더 걱정돼요!”

‘발리 살이’ 7개월 차 원지현(27) 씨. 쾌활한 성격에 햇볕에 그을린 피부, 이미 발리에 흠뻑 젖어 있는 원지현 씨는 한눈에 국적을 파악하기 어려운 모습이었습니다. 평범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가 말하는 ‘일반적인 수순’대로 대학에 입학했지만 그는 언제나 ‘춤’이라는 딴짓이 있었습니다. 원지현 씨는 ‘춤’이라는 딴짓과 ‘글로벌 커리어’라는 꿈이 만나 딴짓을 업으로 삼았습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기술을 알아보던 중, 춤과 운동을 함께할 수 있는 EDM 요가를 알게 됐고 그 매력에 푹 빠진 것입니다.

안정적인 환경을 포기하고 아무도 없는 타지로 훌쩍 떠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닌데요, 원씨는 “미래를 걱정하며 ‘지금’을 담보 잡힐 순 없다”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는 매일 아침 자연의 현장에서 명상하고 숲과 해변에서 EDM 요가 수업을 연다고 합니다. 물론 수업 참여자는 발리로 오는 세계 곳곳의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여유롭고 행복해 보이는 삶도 처음에는 순탄치 않았다고 합니다. 이방인으로 겪어야 하는 새로운 부분들을 마주했고 온라인 코칭으로 돈을 벌고자 했지만 어디서 시작해야 하는지 막막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극한 상황이었던 만큼 실천력이 커지고 더 빨리 성장했다고 원 씨는 전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위해 안정적인 삶을 벗어던지기 주저하는 이들은 흔히 ‘노후’를 걱정하곤 합니다. 원지현 씨는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할 것이 더 걱정된다”고 답했습니다. 노후 걱정은 결국 돈과 안정의 문제로 여겨지는데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건강해지고 결국 열정에는 돈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이야기입니다.



원지현 씨는 평생 ‘딴짓하며 살 수 있는 삶’을 위해 노력 중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스스로 치열하게 질문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면 이를 바로 행동에 옮기는 것! 그것이 바로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수많은 딴짓을 통해 일상에서 벗어나 몰랐던 ‘나’를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딴짓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여지껏 발행된 <딴짓> 매거진의 모습입니다. 현재 11호까지 있다고 합니다.


<딴짓> 매거진을 만드는 ‘딴짓 시스터지’ 2호 황은주(왼쪽) 씨와 3호 장모연(오른쪽) 씨입니다.


■‘호모딴짓엔스’를 외치는 ‘딴짓 시스터즈’

호모딴짓엔스(Homo-Ddanzitens), ‘밥벌이와 연관 없는 행동을 하는 인류’라는 뜻으로 소소하고 쓸데없는 여러 활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채우는 인간집단입니다. ‘딴짓 시스터즈’는 인류의 종류를 새롭게 명명하고 나서며 재미난 딴짓을 찾아 나서기 위해 <딴짓> 매거진을 시작했습니다. ‘딴짓 시스터즈’는 딴짓 매거진을 만드는 3명의 각기 다른 직업과 취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 중 전직 PD이자 출판사 편집자인 시스터즈 2호 황은주 씨와 관광청 마케터로 일하다 드레스 아틀리에를 운영하게 된 시스터즈 3호 장모연 씨를 만나보았습니다.

각자 직장을 다니며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딴짓 매거진 1호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시작됐습니다. ‘딴짓 시스터즈와 산책하기’ 등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인 자금으로 3개의 잡지를 출판했고 이후엔 자립을 통해 꾸준히 잡지를 만들어 왔습니다. 지금까지 11호의 딴짓 매거진이 나왔고 ‘어일론(어떻게 일해야 할까에 대한 심층 토론)’, ‘어결론(어떻게 결혼해야 할까)’, ‘어딴론(어떻게 딴짓해야 할까)’ 파티를 열어 각지의 호모딴짓엔스들이 모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딴짓의 스튜디오이자 주요 공간이 된 ‘공간 틈’은 딴짓 시스터즈들의 ‘딴짓’을 알게 된 한옥의 주인이 좋은 취지로 공간을 사용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딴짓이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어감을 바로잡자는 것도 잡지의 취지였습니다. 장모연 씨는 ‘딴짓’이라는 용어를 외국 친구들에게 설명할 때 애먹었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친구들에게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설명하기 위해 ‘딴짓’이라는 단어를 영어로 번역해야 했는데 마땅한 단어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영어사전에서는 ‘other things(다른 일)’이라고 정의돼 있지만 한국에서 소비되는 어감을 전부 담지 못했습니다.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한국의 교육 현실과 사회 모습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고 하네요. 중심이 되는 일에서 벗어나 다른 일을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한눈을 파는’ 혹은 ‘불필요한 일을 하는’ 것으로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고유한 사회성이 반영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간 틈’은 <딴짓> 매거진 제작을 비롯해 다양한 문화 행사가 펼쳐지는 ‘딴짓시스터즈’의 공간입니다.


내부에는 다양한 책이 구비돼 있고 이곳에서는 ‘북스테이’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루종일 책을 읽으며 한옥에서 하룻밤을 지내는 프로그램입니다.


■호모딴짓엔스, 세대차이의 결과물인가요?

그렇다면 호모딴짓엔스는 새롭게 등장한 인류일까요? 장모연 씨는 그렇다고 말합니다. 과거에 비해 현 세대는 여러 갈래로 나뉘어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여러 집단들이 다양한 형태로 쪼개져 살아가고 그 갈래 중 하나가 바로 호모딴짓엔스라는 거죠.

하지만 장 씨는 호모딴짓엔스로 우리 세대를 통칭할 수 없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이 있고 책임져야 할 것이 많은 사람에게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기 때문이죠.

현재를 중요하게 여기는 ‘욜로족(YOLO·‘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뜻하는 You Only Live Once의 앞 글자를 딴 용어로 미래 또는 남을 위해 희생하지 않고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있는 반면 그 어느 때보다 공무원에 대한 수요가 높은 세대입니다. 월급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이가 있는 반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요. 모두 존중받아야 할 삶의 방식입니다.

딴짓은 단지 잠깐의 틈을 가질 수 있는 작은 행동들로 다시 일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는 자아 발견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시간 낭비가 아닌 전환과 회복의 시간인 셈이죠. 아래에 소개된 한 초등학생의 말처럼 아무리 딴짓해도 결국 우리는 할 일을 합니다. 그것이 밥벌이든 영원한 딴짓이든 말입니다.



/최정윤 인턴기자 kitty419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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