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097230) 통상임금 소송에서 근로자 측 손을 들어준 대법원이 판결문에 엉터리 수치로 논거를 댄 것으로 확인됐다. 완전자본잠식 회사에도 “경영상 어려움을 따지는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적용은 어렵다”고 미리 결론을 내리고 상고심만 3년 동안 끌면서 성의 없이 판단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더욱이 신의칙과 관련해서는 상장사에 대한 대법원 첫 판단이라 이전에 나왔던 비상장사들에 대한 판결 근거도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조계와 재계는 3일 공개된 김모씨 등 한진중공업 노동자 360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 판결문에 사실관계가 잘못된 부분이 곳곳에 있다고 지적했다. 우선 대법원은 한진중공업의 매출액을 5조~6조원으로 파악했지만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진중공업은 논란이 된 지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4조원의 매출도 거둔 적이 없었다. 더욱이 판결문에는 “한진중공업의 매출액은 매년 큰 등락이 없었다”고 판시됐지만 한진중공업 매출은 2008년 3조8,480억원을 기록한 뒤 단 한 번의 반등도 없이 2014년 1조7,990억원까지 떨어졌다. 2015년 2조413억원을 기록했지만 이미 1조8,067억원이 증발한 뒤였다. 지난해 한진중공업의 매출액은 1조7,509억원이었다. 5조~6조원이라는 엉터리 매출액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5억원 상당의 추가 수당 비중도 0.01%가 아닌 0.1%로 잘못 계산한 채 그대로 판결문에 실었다.
한진중공업 통상임금 사건에서 판결문 오류는 대법원뿐만이 아니었다. 2016년 6월 사측의 승리로 결론 난 서울고등법원 2심 판결문에는 한진중공업의 2008~2010년 순이익이 무려 10배나 뻥튀기됐다. 2008~2010년 한진중공업의 실제 순이익은 각각 630억원, 519억원, -517억원이었으나 판결문에 삽입된 표에는 6,300억원, 5,190억원, -5,175억원으로 기재됐다. 당시 재판부는 이 통계를 근거로 “한진중공업은 2012년을 제외하면 2010년 이후 계속 큰 폭의 적자를 내고 있었다”며 추가 수당을 줄 필요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장은 공교롭게도 가장 최근인 지난해 12월 대법원에 합류한 김상환 대법관이었다.
대법원은 본지 취재진의 지적에 대해 “다음 주에 대법관 직권으로 판결경정을 할 것”이라며 “숫자가 달라져도 결론은 같다”고 해명했다. 판결경정이란 판결에 오류가 있는 것이 명백할 경우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판결문을 바로잡는 절차를 말한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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