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텃밭에 감자, 고추, 상추 등을 심었다. 농사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그래도 고랑을 파고 흙을 뒤집고 비료도 뿌렸다. 나름 땅에 무엇인가 심는다는 건 농사 행위에 가깝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하다. 그런데 올봄 할 일을 다 마친 것 같은 기분도 오래가지 않았다.
이웃집에서 같이 고구마를 심자는 것이다. ‘아니 어디에 심을건 데.’ 그냥 놀고 있는 땅이란다. 집에서 멀지도 않단다. 어떻게 된 일인지 얘기를 들어봤다. 이곳 양평은 나름 땅 부자들이 많다. 아내와 친한 엄마가 체육센터에 다니는데 그곳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분이 갖고 있는 땅이란다. 원래 빌라를 지을까 했는데 아직 그럴 계획은 없다고 했다. 심고 싶은 건 뭐든지 심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토요일 아침 부부동반으로 삽, 호미, 물통을 챙겨 나섰다. 카트를 끌고 도로 갓길을 따라 오르막을 올라갔다. 아침인데도 봄 햇볕은 피부가 따끔할 정도로 뜨거웠다.
‘여기야?’
드넓은 땅 위엔 풀들이 우거져 맨땅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건 마치 서부개척 시대의 황량한 땅 같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지 꽤 시간이 흐른 땅. 그 곳에 우리는 고구마를 심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왔다. 먼저 어느 위치에 어느 정도의 면적을 사용할지를 정해야 했다. 땅 상태는 어떤지 체크도 했다. 다행히 삽이 쑥쑥 잘 들어간다. 돌 땅이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하늘이 도왔다. 기분 좋게 풀들을 훌훌 걷어내고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흙이 부드럽다. 물기도 적당히 품어 메마르지 않다. 이런 게 기름진 땅인가.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땅 좋은데’ 했다.
이제 고랑과 이랑을 만들 차례. 처음부터 너무 욕심 내지 않기로 했다. 아무 것도 안 되어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1m 남짓 되는 이랑 하나만 만들기로 했다. 땅을 두둑하게 쌓으며 차근차근 모양을 만들어 갔다. 전체 길이는 약 10m 정도 되는데 농사는 늘 할 때마다 허리가 고통을 호소한다. 남자들은 흙을 뒤집고 여자들은 돌을 골라냈다. ‘좀 더 높여봐.’ 옆에서 아내가 더 두둑하게 쌓아보라는 뜻이다. 이런 때는 토 달지 말고 따라줘야 일이 편한 법.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럴듯한 이랑이 만들어졌다. 귀촌 3년 만에 농사꾼 다 된 듯 ‘작품’ 앞에서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이제 비닐을 덮고 그 위에 구멍을 내 고구마를 심었다. 캠핑용 물 주머니에 담아온 걸로 구멍에 듬뿍 뿌렸다. 그다음에 고구마 줄기를 심으면 끝. 두어 시간 동안 땅과 씨름하면서 올가을 수확할 고구마밭을 완성했다. 남의 땅을 빌려 시작한 김에 다른 작물도 심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전혀 개간이 안 된 곳에 무엇을 심으면 좋을지보다 벌써 걱정부터 앞선다. 몸이 거부 반응을 하는 것이다. 농부의 길은 멀고도 멀다. /최남호기자 yotta7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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