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족은 정도를 지키며 또 창조적인 민족이다. 중화민족은 대외 침략의 전통을 갖고 있지 않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4일 베이징을 찾은 프로코피스 파블로풀로스 그리스 대통령에게 한 말이라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당시 중국 주도의 ‘아시아문명대화대회’ 행사 때문에 평화와 교류 분위기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이해는 간다. 하지만 시 주석 말의 의미가 중화민족, 즉 중국이 ‘역사상 외국 침략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것인지 아니면 ‘자주 침략을 했지만 그것이 전통까지는 아니다’인지 불분명하다. 아시아문명대화대회의 배경인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이 고대 실크로드를 기원으로 하고 있고 또 이는 원래 대외침략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중국은 실크로드가 2,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나라 무제 시기인 기원전 139년 중앙아시아로 여행한 장건을 실크로드 ‘개척’의 시작으로 삼는다. 물론 장건은 단순한 탐험가가 아니었다. 당시 중국의 최대 적국은 지금의 몽골과 네이멍구에 살고 있던 유목민족 흉노였다. 한나라 무제는 중앙아시아에서 흉노에 대항할 동맹을 찾기 위해 장건을 대표로 한 ‘특사단’을 파견했다. 그다음으로 무역상들이 동원됐고 무력으로 도시들을 지배하면서 길을 만들었다.
한나라의 흉노전쟁은 한국과도 관계가 있다. 당시 중앙아시아에서 흉노를 몰아낸 한나라 무제는 만주에서도 침략행위를 한다. 기원전 109년 고대조선과의 전쟁이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는 한나라의 조선 공격 이유를 “한나라가 한반도 주변 국가들과 교류를 하려는데 조선이 이를 막았다”로 들고 있지만 이는 침략자 측의 강변일 뿐이다. 마치 일본이 임진왜란을 일으키면서 ‘정명가도(명나라를 정벌하려는 데 길을 빌려달라)’를 핑계로 삼은 것과 비슷하다.
당시 동아시아의 상황을 보면 중국이 실크로드를 지배하면서 흉노의 오른팔을 찢은 후 조선을 제압해 그 왼팔마저 꺾으려 했다는 해석이 더 정확하다. 물론 고대조선이 흉노와 연계돼 중국에 대립했다는 기록은 없다. 아마 한 무제의 과대망상이었을 것이다. 원래 지금의 산시성·허난성 지역에서 출발한 중국 한족은 점차 주변을 합병하면서 영토를 넓혔다. 중국의 역사는 대외 침략과 정복의 역사이기도 하다. 당시 적국이었던 유목민족도 현재는 중국 측이 주장하는 ‘중화민족’에 포함돼 있는 상황이다.
역사적 유물로만 남아 있던 실크로드가 최근 화려하게 부활했다. 시 주석이 집권하면서 실크로드의 현대 확장판인 일대일로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어서다. 일대일로 시대 중국의 ‘주적’은 미국이다. 미국의 중국 포위견제에 맞서 아시아와 유럽에서 동맹국을 구하고 또 세력권을 구축하려는 것이 경제블록 일대일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과거 실크로드는 결과적으로 세계 역사에 도움이 됐다. 동서양 민족들을 잇는 길이 생기고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부를 늘렸다. 문제는 방식이다. 원래 실크로드가 적대적 세력을 견제하는 데 존재 이유를 뒀기 때문에 항상 전쟁과 갈등의 무대였다. 주도권을 쥐려는 특정 세력이 다른 세력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현대판 실크로드인 일대일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맞선 중국 독자의 세력을 구축하겠다는 욕심에 다름 아니다. 과거 흉노 등 유목민족이 중국에 저항했듯이 현대의 미국 등 서구세력은 중국 중심의 위계적 ‘중화질서’를 인정할 수도 없고 생각도 없다.
다시 한국이 중국 주도의 일대일로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 됐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이 사전 경고였다고 해석하면 어떨까. 중국은 일대일로에 한국을 참가시키려고 집요하게 시도하고 있다. 최근 현지에서 중국 당국자를 만난 한국 측 인사들은 일대일로가 모든 논의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국의 투자자금이 절실한 중앙아시아나 동남아시아, 중동, 일부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한국에는 이득이 별로 없다.
일단 우리 정부는 대외 비전인 신북방·신남방정책과의 연계 가능성을 살펴본다는 입장이다. 과거 고대조선이 한나라와 흉노 사이에 끼었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과 미합중국 중간에 위치한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설정이 중요해진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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