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인출기(ATM) 위에 마약 같은 게 있는데요.”
지난 2월20일 낮 경찰 112 신고 센터에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강남구 논현동의 한 ATM 근처에서 마약이 담긴 봉투를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신고자는 인근 주민이었다. 경찰은 즉시 관할 지구대원과 마약팀을 현장에 보냈다.
이후 서울 강남경찰서는 마약으로 의심되는 하얀 가루의 성분 검사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한 달 남짓. 그 사이 경찰은 ATM 및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종합해 해당 가루를 두고 간 것으로 보이는 A(31)씨의 동선을 추적해 주거지를 확인했다.
결과는 4월께야 나왔다. 국과수 분석 결과 지난 2월 ATM 위에서 발견된 하얀 가루는 필로폰으로 확인됐다. 곧장 경찰은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고 주거지에서 A씨를 검거했다. 동시에 주거지 압수수색도 진행했다. A씨 자택에서는 마약이 쏟아졌다. 경찰은 필로폰 22.21g과 대마 12g 등을 발견했다. 일반적인 필로폰 1회 투약 분량은 0.03g~0.05g, 대마 1회 흡연 분량은 0.5g으로 알려졌다. 필로폰의 경우 최대 700회 가량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인 셈.
경찰은 공범 파악에 나섰다. A씨의 통화 내역을 들여다보자 지난 2월 10대 청소년 3명과 논현동 주거지에서 함께 필로폰을 투약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 중 A씨와 함께 필로폰을 투약한 다른 10대 1명은 A씨로부터 필로폰을 전달받아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A씨와 10대들 사이에 별다른 추가 범죄 혐의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신사동과 논현동 인근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 친해진 관계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0대 3명은 학업을 마치거나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서울 강남경찰서는 A씨를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고 지난 23일 밝혔다.또 A씨와 함께 마약을 투약한 10대 3명과 20대 B씨도 같은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실수로 ATM 위에 마약을 두고 갔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잠깐의 실수로 그간의 범죄 행각이 모두 드러난 셈이다.
그러나 끝내 A씨의 마약 공급책은 밝혀내지 못했다. A씨가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지인을 통해 마약을 얻었지만 누군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공급책에 대해 잡아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미성년자 등에게도 마약이 공급이 되고 있는 만큼 마약사범 단속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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