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부산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르노삼성차 부울경 협력업체 긴급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르노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납품 비중이 높은 협력업체들이 심각한 위기 상황에 부닥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상의 관계자는 “현재까지 64차례에 이르는 부분파업으로 발생한 누적 손실만 3,000억원 이상인 상황에서 이번 전면파업으로 인해 손실의 심각한 확대가 우려된다”며 “전면파업 참여율은 40% 이하로 나타나고 있지만 일부 공정에서 차질이 발생하면 전체 생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몇몇 1차 협력업체는 이미 구조조정을 해 지역의 일자리 감소뿐만 아니라 협력업체의 공급력 저하로 이어질 경우 향후 르노삼성차에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노에 제품을 100% 납품하고 있는 1차 협력사인 E사는 회사 창립 이래 처음으로 구조 조정을 해 직원 9명을 내보냈다. 평소 노사화합의 가치를 매우 높게 추구하던 회사다 보니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으나 4월에만 40억 원이 넘는 손실이 나자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현재도 하루 5,000만원 정도의 손실이 계속해서 누적되고 있는데다가 하루 8시간 생산물량마저 확보하지 못해 임금 부담만 가중되고 있다. 르노삼성자동차를 100% 전업하던 L사는 4월 이후 물량을 전혀 받지 못하자 부산공장을 정리해버렸다. 파업 사태 이후 매월 17억 원 정도의 매출 손실이 발생한 차체부품을 납품하는 S사는 임금이 줄어든 직원들의 자발적 퇴사가 줄을 잇고 있다. 르노가 이 회사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40%에 이른다.
르노 1차 협력업체에 물량의 80%를 공급하고 있는 T사는 90명에 이르는 직원 중 사무관리직을 중심으로 30% 가까운 인원의 자발적 이직을 유도했다. 지난 분기와 비교할 때 물량이 15~20% 가량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생산과 품질 관리직의 이직으로 공정 관리가 되지 않아 불량 증가, 품질 저하 등 이중고에도 시달리고 있다. 르노 매출비중이 80% 이상인 H사도 1·4분기 매출이 21% 줄어 주야 2교대 근무를 주간 근무로만 실시하고 있으며 생산에 고용된 외주인력 30명을 이미 감축했다.
납품물량이 절반 이상 줄면서 협력업체 대부분은 단축근무와 휴업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큰 폭의 매출이 감소하고 있는데다 고용유지를 위한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면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협력업체 내에서는 연쇄 도산의 우려마저 확산하고 있다.
K사는 15% 가량의 매출 감소로 생산물량을 줄이기 위해 5월에만 7일간의 휴업을 했다. G사도 르노 휴가에 맞춰 단체 연차를 사용하면서 생산량을 조절하고 있다. A사의 경우는 고용유지를 위한 지원금을 받고는 있지만 한 달 지원금이 하루 손실 5,000만원에도 못 미치고 있어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상황이 이처럼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협력업체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르노 노사에 대한 원망의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D사는 차라리 전면파업을 하면 같이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 되는데 지금처럼 르노 노사가 근무 인력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면서 일부 공정을 가동하게 되면 제품 공급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제품 생산을 할 수 밖에 없어 협력업체를 더 어렵게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사태의 악화로 로그 후속 물량 확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아예 대체 물량 확보에 나서는 기업도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C사는 AS를 포함해 대체 물량을 가져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근로자들이 신규물량 생산에 적응이 되지 않아 생산효율과 품질 관리에 애로를 겪고 있었다. 본사에서 물량을 받아 르노에 납품하는 B사도 르노 비중이 크기 때문에 현 상태가 지속하면 본사에 다른 판로 개척을 요구할 계획이다.
부산상의는 “르노 사태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어 지금까지 간신히 버텨 온 협력업체들이 고사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며 부울경 협력업체의 구조조정과 고사 위기는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 경제에 큰 부담이 되는 만큼 르노삼성차 노사 양측의 전향적인 노력과 조속한 합의 타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번 조사는 부산상의가 합의안 도출로 타결될 것으로 보였던 르노 사태가 노조에서 합의 사항이 부결되면서 갈등이 재점화 됨에 따라 협력업체 대한 두 번째 긴급 모니터링을 한 것으로 부산뿐만 아니라 경남과 울산 소재의 협력업체를 포함해 총 45개사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부산=조원진기자 bscit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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