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튀’라는 말, 혹시 들어보셨나요?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익숙한 용어인데요. 타인의 집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가는 장난을 일컫습니다. 옛 시절 동네 말썽꾸러기라면 한 번쯤 해봤을 이 장난이 10대들로부터 ‘벨튀’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는데요. 얼마 전 중고등학생 11명이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벨튀’를 하다가 아파트 출입문을 부숴 경찰에 입건된 일이 있었습니다. 단순 장난에 불과하던 ‘벨튀’가 어쩌다 사회적 논란거리로 떠올랐을까요?
■뉴트로 아이템으로 소환된 ‘벨튀’
10년 전 한때 아파트 단지에서 초인종 장난을 쳐봤던 김 군(26)은 “유튜브에서 한국민속촌 벨튀 영상을 보고 ‘벨튀’라는 말을 알게 됐다”며 “어릴 적 추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벨튀 체험은 한국민속촌에서 기획한 ‘추억의 그때 그 놀이’ 이벤트 중 하나로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치는 관람객을 ‘이놈아저씨’로 분장한 민속촌 직원이 쫓아가 벌을 주는 콘텐츠입니다.
이벤트 시간이 되면 민속촌 내 파란 대문 앞으로 ‘벨튀’ 현장을 구경하기 위해 관람객들이 모입니다. 관람객이 초인종을 누르면 복고 분장을 한 배우들이 나와 관람객과 추격전을 벌입니다. 이때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짧은 영상으로 편집돼 민속촌 유튜브 공식채널에 업로드 되는데요, 그 인기가 어마어마합니다. 민속촌은 “뉴트로 열풍에 힘입어 벨튀 체험 대기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는다”며 “체험 유튜브 영상은 1,2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뉴트로란 뉴(New)와 레트로(Retro)가 합성된 말로 새로운 복고를 의미하는 신조어입니다. ‘벨튀’ 체험은 보안 시스템이 갖춰진 주거지가 많지 않던 시절, 곧잘 남의 집 대문 초인종을 누르며 장난치던 기성세대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반면 지금 10대들에게는 새로운 놀이입니다. 한 달에 한 번 벨튀를 해본 초등학생 김 군(12)은 “벨튀 하고 도망갈 때 스릴이 넘친다”며 “당한 사람 반응 보는 것도 재밌다”고 말했습니다.
■너도나도 유튜브 ‘벨튀’ 인증
10대에게 벨튀는 장난에 그치지 않고 온라인에서 즐길 수 있는 인증 문화가 되었습니다. 올해 중학생인 강 군(14)은 “초등학생 때 한 달에 3~4번 하다가 졸업 후에는 유튜브로 벨튀 영상을 본다”고 말했습니다. 유튜브에 ‘벨튀’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하루 3~4건 꼴로 관련 영상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었으며 평범한 어린이부터 인기 유튜버, 연예인 등 유명인이 공개한 벨튀 인증 영상도 많았습니다.
벨튀 인증 영상을 본 대부분 사람들은 “개그콘서트보다 더 재밌다” “도망가는 모습이 귀엽다” 등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벨튀 당하는 사람이 싫어하겠다”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지 마라”와 같은 부정적인 댓글도 물론 있었지만 극소수였습니다. 벨튀 인증 영상을 즐겨보는 초등학생 이 군(11)은 “벨튀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는 사람 집을 골라서 한다”며 “크게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장난을 넘어 범죄로…점점 과해지는 ‘벨튀’ 장난
유튜브에서는 자극적인 콘텐츠가 주목받기 쉽습니다. 벨튀 인증 영상도 마찬가지인데요. ‘1층~3층 벨 다 누르기’, ‘시키면 한다, 벨튀 하고 문 막기’, ‘층간소음 윗집 벨튀로 복수했습니다’, ‘친구 집 10분 동안 벨튀 하기’ 같은 자극적인 인증 영상을 유튜브에서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10대가 재미와 인증을 위해 이러한 영상을 모방한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보안 시스템이 설치된 아파트에 침입해 타인의 출입문을 부숴 경찰에 붙잡힌 10대 11명은 유튜브에서 벨튀 인증 영상을 보고 재미삼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10대들이 벨튀 영상을 따라하며 유튜브나 온라인에 인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벨튀를 통해 재미를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청소년 심리학 전문가인 김은정 아주대 교수는 “자기 중심적인 벨튀 영상을 인증함으로써 과시욕을 드러내 자기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며 “10대는 벨튀라는 일탈 행동을 통해 자신감과 해방감, 자기도취 등을 느낀다”고 답했습니다. 아울러 “어쩌다 벨튀를 하는 것은 건강한 일탈이라고 볼 수 있지만 횟수가 잦아지면 심리적 문제를 의심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10대들의 벨튀 행위가 범죄로 이어지자 지난 4일 한국민속촌은 “체험은 체험일 뿐 따라 하지 말자”며 벨튀 모방 방지를 위한 캠페인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과 같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재미를 추구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가 우선한다는 사실을 배워 나가길 소망해 봅니다.
/황민아 인턴기자 noma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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