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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국민소득 4만弗?...제조업 붕괴로 경제 내부서 위기 폭발할 수도"

■Mr. 환율 최중경 전 장관의 경고

경기 추락하고 대외여건 불안...지금은 외환위기로 가는 초입국면

국민소득 1만弗 목표 내걸다 1997년 IMF 사태로 경제주권 상실

한국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엔 경상수지·환율 등 '대외균형'이 중요

원화, 엔·위안화와 동조유지는 경제안보 직결...외환도 더 쌓아야

국제금융통인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금이 위기라는 데 동의하지 않지만 위기로 가는 초입 국면에 있다”며 “개방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대내 균형’보다 ‘대외 균형’을 우선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승현기자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나라로서는 환율은 민감한 이슈다. 대외 개방도가 높아 외부 충격에 취약하고 자본 유출의 위험성에 늘 노출돼 있어서다. 유사시 현금화가 손쉽기에 한국은 국제투자자로부터 현금인출기(ATM)쯤으로 인식된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이후 환율 변동성이 부쩍 높아졌다. 주요 선진국들은 무역전쟁의 후폭풍에 대비해 재차 돈 풀기에 돌입할 조짐이어서 환율전쟁의 그림자마저 드리우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이 이번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연유는 여기에 있다. 국제 금융통인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한국공인회계사회장)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회계사회 집무실에서 만났다.

-2004년 역외 환율방어로 ‘최틀러(최중경+히틀러)’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어떤 기분이 들었는가.

△기분 좋을 게 뭐 있겠나. 월가의 한국 데스크들이 그런 별명을 지었다. 악감정을 가질 만도 하다. 월가 외환딜러들이 한국의 환율방어 때문에 큰 손실을 입어 대거 해고된 것으로 안다. 외환위기를 겪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시점에 한국 공무원이 설마 월가 외환파생시장에 뛰어들 것이라고 생각했겠는가. 내가 국제금융국장에서 물러나자 월스트리트저널이 ‘드디어 최가 잘렸다’고 썼더라.(웃음)

-2008년 고환율 정책은 논란이 많았다.

△2007년부터 경상수지 적자가 났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다가오는데 어떻게든 반전시켜야 할 상황이었다. 외환위기는 간단하다. 불안하니 내 돈 돌려달라는 것부터 시작한다.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면 우리의 지불 능력이 의심받게 된다. 한쪽에서 고물가를 걱정하는데 속으로 웃었다. 블랙스완이 뜰 상황인데 물가 타령을 해야 하나. 2004년 역외시장에서 환율 방어할 때 확보한 750억달러 규모의 달러매수권은 2008년 금융위기 때 제2의 외환 보유고 역할을 했다.

-시장을 이기는 정부가 없지 않나.

△맞는 말이다.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면 정부가 나설 이유가 없다. 시장에 이상기류가 발생하고 투기세력이 설치는데도 공무원이 팔짱만 끼고 있어야 하나. 투기자본이 우리 경제의 미래를 생각하는가. 시장을 시장답게 만드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환율정책은 국가 전략차원의 문제다. 일본을 보라. 아베노믹스의 본질이 뭔가. 무한 돈 풀기를 통한 엔저 유도정책이 아닌가.

최중경 전 장관이 미국 헤리티지재단에서 3년간 연구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2016년 말 ‘위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는 책을 펴냈다. ‘최틀러’답게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환율정책이 국가 전략 차원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거시정책 수단은 크게 3가지가 있다. 금리와 재정· 환율이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로서는 해외 자본이 쉽게 넘나들어 통화 정책의 약발에는 한계가 있고 금리조차 제 맘대로 결정하지 못한다. 재정은 만성 적자에다 복지 등 경직성 지출이 많아 운용에 제약이 많다. 남은 정책 수단은 환율뿐이다. 경제 운용의 성과가 환율 정책에 의해 좌우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미국과의 플라자합의로 인한 엔고가 시발점이었다. 반대로 아베노믹스의 엔저 정책은 추락한 일본 제조업의 경쟁력을 되살려 놓고 있다.

-다른 나라 환율에 대해 사사건건 간섭하는 미국은 왜 엔저를 용인하는가.

△엔저는 경제이슈가 아닌 정치이슈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요구했다. 돈이 없다는 일본은 미국의 용인 하에 엔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엔저는 미국 안보전략의 부산물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제조업 위기에도 엔저 영향이 있는가.

△물론이다. 기업의 본질적인 경쟁력 추락 탓도 있지만 엔저 후폭풍도 컸다. 아베노믹스는 제조업 위기를 가속화시켰다. 엔화 가치는 달러당 70엔에서 한때 130엔까지 떨어졌다. 우리 기업이 버틸 수 있겠나. 대외적 차원에서 또 하나의 요인은 중국의 기술 기업 사냥이다. 중국이 엄청난 보유 외환을 바탕으로 전 세계 핵심 기술을 빨아들였다. 문제는 원화가치가 엔화에 동조화하지 않고 올랐다는 점이다. 엔저 가속기에 원고를 방관한 것은 환율정책 실패, 좀 더 나아가 거시정책의 실패다. 엔저·원고를 다시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원화의 엔과 위안화 동조화 유지는 경제안보와 직결된다. 개방경제로 전환했으면 소득과 물가를 중시하는 대내 균형보다 경상수지와 환율 측면의 대외 균형이 우선해야 하는데도 여태껏 정착이 안 돼 안타깝다.

-그럼 닥치고 수출하자는 말인가.

△내수와 수출의 균형을 맞추지 말자는 의미는 아니다. 분명한 것은 내수가 수출의 등가물이 못 된다는 점이다. 내수확장에는 한계가 있다. 독일을 보라. 인구가 우리의 1.5배 수준이지만 수출의존도는 더 높다.

- 미중 무역전쟁이 걱정스럽다. 이번주 말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데 전환점이 될까.



△큰 기대는 하기 어렵지 않겠나. 코뮈니케(공동성명)는 원론 수준에 그칠 공산이 크다. 주요2개국(G2) 정상이 약간씩 양보하는 진전이 있을 수 있지만 대단한 합의는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제재를 재선 가도의 보증수표로 여길 것이다.

미중 정상이 2017년 11월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블룸버그


-무역전쟁의 승자는 누구인가.

△기축 통화국가의 힘을 무시해선 안 된다. 미국은 최후의 방어선이자 강력한 무기가 있다. 달러다. 무한정 찍어내도 인플레이션이 없다. 달러가 해외로 배출되고 대신 상품이 들어온다. 미국이 유일 패권을 쥔 것은 2차 대전 후 브레턴우즈 협약 체결 이후이지만 이보다 근 100년 전 영국을 제치고 산업 대국이 됐다. 중국의 경제규모가 머지않아 미국을 제친다고 해서 기축통화국 지위를 확보할 수 없다. 엔화는 1970년대 아시아개발은행(ADB) 엔화 표시 채권을 발행하면서 국제통화로 가는 길을 열었다. 중국 위안화는 딱 그 수준이다.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이어지지 않겠나.

△주요 수출국마다 비상이면 달리 방법이 있나. 환율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있든 없든 금리를 낮추거나 양적 완화로 돈을 풀면 화폐가치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다만 미국이 전면적인 환율전쟁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에 그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지금도 수출 전선이 매우 불안하다.

△관세 부과의 수출 악영향은 시차를 두고 발생한다. 수출이 마이너스로 추락했지만 무역전쟁의 파고가 우리 경제에 들이닥치는 시기는 내년 초부터일 것이다. 지금의 수출 침체는 무역전쟁의 영향이라기보다는 경쟁력 약화에서 비롯됐다. 내년에는 더 힘든 시기가 될 것이다.

-지금의 경제상황을 평가한다면.

△더러들 위기라고 하지만 지금이 위기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외환 위기로 가는 초입 국면이라고 본다. 경기는 추락하고 대외 여건도 불안 요소가 가득하다. 외환 위기는 바깥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내부에서 폭발할 수 있다. 1980년대 핀란드와 스웨덴이 그랬다. 부동산 가격 폭락에 은행 담보가 부실해지자 외국계 은행들이 크레디트라인(신용공여)을 끊어버렸다. 우리 주력 산업은 아베노믹스 엔저 공세와 중국의 기술 추격에 빈사 상태로 몰리고 있다. 수출 침체는 내수에도 악영향을 준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로서는 안팎 양방향에서 위기가 발생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최중경 전 장관은 “아베노믹스발 엔저 공습때 원고를 용인한 것은 환율정책의 실패”라며 “엔저-원고를 다시는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오승헌기자


-외환 보유고는 적정한가.

△더 쌓아야 한다. 국제기준에는 두 가지가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을 넘지만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에는 못 미친다. BIS 기준은 자본시장 계정을 포함한 것이다. 가뜩이나 ATM 신세로 자본 유출입이 용이한 우리나라로서는 당연히 BIS 기준에 맞춰야 한다. 많이 쌓은 듯 보이지만 줄어드는 것은 순식간이다. 2005년 국제금융국장을 떠날 때 1,000억달러의 대외순채권이 있었지만 3년 뒤 기재부 1차관으로 복귀하니 대외순채무국으로 전락했다.

-지난주 정부가 2030년 제조업 4강과 소득 4만달러 시대를 열겠다고 했는데.

△정부가 아직도 국민소득 얼마라는 목표를 제시해야 하나. 개방 이전 폐쇄형 경제구조 때를 그대로 답습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못해 슬프다.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이라니. 1만 달러를 목표로 내걸다 IMF 사태로 경제 주권을 상실했다. 2008년엔 2만달러 수성에 목매다 환율정책을 손 놓고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면서 위기 직전까지 몰렸다. 국민소득이 정책목표가 될 때마다 위기를 맞았다는 교훈을 왜 잊어버리나. 제조업 4강은 공허하게 들린다. 기업의 어깨를 가볍게 해도 시원찮을 판에 되레 무겁게 하고 있지 않나.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He is…

‘환율이 제멋대로 움직이도록 좌시해서는 안 된다’는 환율주권론자.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때(2003~2005년 ) 강력한 시장 개입에 나서면서 ‘최틀러’라는 별명을 얻었다. 기획재정부 1차관과 필리핀 대사·청와대 경제수석을 거쳐 지식경제부 장관을 끝으로 33년 공직을 마무리했다. 미국의 보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에서 3년간 국제관계를 연구하다 2016년부터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을 맡고 있다. 1956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나 경기고·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2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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