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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 용이 승천하듯 굽이친 능선…여름도 쉬어가네

■전북 순창

흙길 거닐다보면 어느새 강천산 정상

기암절벽·폭포가 빚어낸 절경 펼쳐져

바람골서 불어오는 냉풍, 땀 식혀주고

계절 잊은 듯한 적단풍은 낭만 더해

고추장민속마을서 장류 체험하고

세계 각국의 소스 정보도 한눈에

강천산에는 벚꽃뿐만 아니라 잎이 작은 아기단풍 군락도 조밀하다. 군데군데 적단풍이 끼어 있어 마치 가을의 풍경처럼 느껴진다.




전남에 순천이 있다면 전북에는 순창이 있다. 호남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야 순천과 순창을 잘 알지만 외지인들은 지명이 비슷한 두 곳을 혼동하기도 한다. 지난겨울 순천에 취재 갔을 때 택시 기사님께 들은 일화 한 토막. “가끔 역에서 손님을 태우면 고추장 파는 데로 가자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고추장 파는 곳은 순창이고 여기는 순천이라고 설명을 하지요.” 그래서 그때 결심했다. 올해는 어떻게든 순창에도 한 번 가보자고. 미루고 미루던 끝에 드디어 신발 끈을 매고 집을 나섰다.

사람들은 ‘순창’이라고 하면 고추장을 떠올린다. 순창 고추장이 천하제일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나 볼거리를 꼽으라면 순창에서는 단연 강천산이다. 단언컨대 강천산은 대한민국의 산 중에서 가장 오르기 쉬운 산이다. 사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오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그냥 평지를 걷다 보면 정상이 나온다. 게다가 자태도 빼어나고 초입부터 옥수(玉水)가 흐르는 계곡이 이어져 산행이 지루하지 않다. 등산로 곳곳에 있는 바람골에서는 자연산 냉풍이 쏟아져 내려오기 때문에 주변보다 3~4도 낮아 피서에 안성맞춤이다.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용천산(龍天山)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강천산은 계곡과 맑은 물, 기암괴석과 절벽이 어우러진 풍경으로 지난 1981년 전국 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게다가 현재 강천산 명소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어 이달 말 사업이 완료되면 야간 조명이 설치되고 프로젝터에서 형형색색의 불빛이 쏟아져 순창은 물론 인근을 아우르는 관광지로 거듭날 것으로 전망된다.

매표소에서 정상까지는 왕복 5㎞ 거리로 등산로가 흙길이어서 맨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정상까지 코스는 병풍폭포→산림욕장→강천사→현수교→구장군폭포로 이어진다. 특히 웰빙(맨발) 산책로는 2005년에 조성된 총구간 2.5㎞, 폭 3m의 길로 초입에서는 2003년 조성된 높이 40m, 폭 15m의 인공폭포인 병풍폭포가 객을 맞는다. 등산은 흙길로도 할 수 있지만 왼쪽에 목재 데크로 조성된 산림욕장을 이용할 수도 있다. 길이 2.6㎞인 강천 계곡 산책로는 숲 속에 조성돼 있어 쏟아지는 산소와 음이온을 온몸에 뒤집어쓸 수 있다.

강천산 등산로 끝에 있는 구장군폭포.


길가에는 순창군수 충암 김정, 담양부사 눌재 박상, 무안현감 석헌 류옥 등 세 사람이 비밀리에 모여 억울하게 폐위된 폐비 신씨를 복위시키기로 하고 각기의 관인을 나뭇가지에 걸어 맹세한 ‘삼인대’가 오가는 등산객들을 쳐다보고 있다. 삼인대 위쪽에는 수령 300년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모과나무가 있는데 동행한 설동찬 해설사는 “오래된 나무이지만 지금도 꽃을 피우고 해걸이로 열매를 맺고 있다”며 “나무는 크지만 늙은 탓인지 열매는 20~30개 정도만 열린다”고 말했다.

등산로 주변에는 길을 따라 벚나무가 식재돼 있다. 설 해설사는 “봄이면 벚꽃이 터널을 이뤄 화개장터 십리벚꽃길 못지않다”며 “꽃구경을 오려면 평일 이른 시간에 다녀가야 체증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천산에는 벚꽃뿐만 아니라 잎이 작은 아기단풍 군락도 조밀해 보였는데 군데군데 적단풍이 끼어 있어 풍경으로만 보면 가을을 방불케 했다. 길이 끝나는 구장군폭포 맞은 편에는 성(性) 테마공원이 조성돼 있어 폭포 구경을 끝내고 남근과 여근을 상징하는 석상들을 둘러볼 만하다.



하산길을 맨발로 내려왔다. 며칠 전 취재 길에서 비를 만나 젖은 등산화를 신고 다녔더니 신발과 발에서 간장 달이는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2㎞를 맨발로 내려와 얼음장처럼 찬물에 발을 담그니 발은 물론이고 몸뚱이까지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다.

순창군이 전통고추장의 명성과 제조비법을 이어가기 위해 1997년 조성한 전통고추장민속마을.


순창을 들른 마당에 전통고추장민속마을을 건너뛰는 것은 사람으로서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차를 남쪽으로 몰았다. 전통고추장민속마을은 순창군이 장류 산업을 활성화하고 전통 고추장의 명성과 제조비법을 이어가기 위해 1997년 조성한 곳이다. 순창군 곳곳에 흩어져 있던 고추장 제조 장인들을 아미산 자락에 있는 백산리 일대로 모아 놓자 이 마을은 하루아침에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인근에는 장류 체험관도 있다. 장류 체험관에는 고추장·된장과 세계 각국의 소스에 관한 정보를 집대성해 놓았다. 이미 4세기께부터 장을 먹는 식문화가 발달했다는 사실을 비롯해 고추가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들어와 재배됐다는 이설까지 다양한 상식을 공부할 수 있다. /글·사진(순창)=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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