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드럼은 다섯 명이 다 친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악기 연주자는 많지만 새로운 피가 수혈될 자리가 없습니다. 젊은 뮤지션들도 자신을 알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경기도 소재의 한 실용음악학원 관계자가 익명을 요청하며 조심스럽게 대중음악 연주자의 현실을 꼬집었다.
한국의 대중음악 프리랜서 연주자들은 벼랑 끝에 서 있다. K팝이 세계를 휩쓸며 매년 2,000명 이상의 실용음악과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지만 일자리는 소수에게 독점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뛰어난 연주력을 지닌 사람을 섭외 우선 대상으로 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 자신을 알릴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데 있다.
대중음악 연주자들은 하나같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인맥’은 필수라고 입을 모은다. 공식적인 절차 없이 알음알음 돌아가는 채용시장에서 연줄을 타야 인지도를 쌓을 수 있고 더 많은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애초에 지인이 부족한 연주자라면 업계에 발을 들여놓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20대의 한 대중음악 연주자는 “지역 페스티벌에서 세션을 모집했는데 보수를 관광상품권으로 지급했다”며 “교통비까지 생각하면 손해지만 경력을 쌓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젊은 연주자들은 끈을 만들기 위해 무임금에 가까운 노동을 제공하고 낮은 임금으로 형성된 시장에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 중년 연주자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 음악계를 떠난다.
실력 위주 인재채용의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흐른다 해도 음악계에서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홍대 에반스, 롤링홀 같은 라이브 공연장이 유행하며 대중음악 연주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알리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럼에도 K팝을 위시한 대중음악이 이미 주류로 우뚝 섰다는 이유로 ‘연주자 발굴’을 위한 정부의 지원책은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새로운 창구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K팝은 목소리와 춤으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세계가 한국 음악을 주목하는 지금 보컬·댄서가 아닌 연주자도 주목받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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