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노사의 임단협을 둘러싼 ‘하투’는 현재진행형이다. 주요 노조들은 쟁의조정 절차를 밟으며 파업권 획득에 나서고 있다. 십수년째 반복되는 똑같은 흐름이다. 노조 파업에 대응할 이렇다 할 수단이 없는 기업들은 연례행사처럼 이어지는 노조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재계는 이런 악순환을 끊어내려면 파업 중 대체근로를 허용하고, 사업장 점거농성 금지 등 제한을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어 현실화하기는 쉽지 않은 실정이다.
13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노사분규는 134건으로 전년 대비 32.6% 늘었다. 이에 따른 근로손실일수는 552일에 달한다. 올해도 다르지 않다. 자동차·조선 등 주력산업 노조들은 지속적으로 파업을 저울질하며 사측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에 일본 수출규제의 여파로 경영환경이 불안한 상황이지만 매년 반복되는 ‘파업 리스크’는 좀처럼 단절되지 않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기본급 6.8% 인상과 당기순이익 1조6,450억원의 30%를 성과급으로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진행된 노조의 파업 찬반투표에서는 전체 조합원의 70.5%가 찬성표를 던졌다. 기아차 노조 또한 기본급 12만3,526원 인상, 영업이익의 30% 성과급 지급을 임단협에서 요구했으며, 73.6%의 찬성률로 파업을 결의했다. 두 회사 노조 모두 최근 파업은 일단 유보하고 집중교섭을 하기로 했지만, 교섭 상황에 따라 언제든 파업에 돌입할 태세다.
조선업계도 파업 시기를 재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중지 결정으로 파업권을 확보했다. 일본의 수출규제 상황이 노조를 신중하게 하고는 있지만 파업 가능성이 큰 것으로 업계는 판단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으로의 피인수에 반대하는 대우조선해양 노조도 오는 10월 집행부 선거를 앞두고 파업을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양대 노총이 모두 노조를 세운 포스코의 경우 교섭대표노조인 한국노총 산하 포스코 노조가 기본급 7.2%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노사관계가 대립으로 치달으면서 파업 등 쟁의행위로 이어지는 패턴은 연례행사다. 노조는 사측으로부터 확실한 파트너로 인정 받지 못한다는 인식 속에 파업 등 쟁의행위를 격렬하게 벌이는 과거 패턴을 관행적으로 이어받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일본의 수출규제 등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의 파업은 노동자 스스로 산업위기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측은 ‘습관성 파업’에 따른 조업중단으로 받는 사회·경제적 손실이 크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딱히 이렇다 할 대응책이 없는 게 현실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수십년째 이어지는 대결적 노사관계의 구조적 문제가 도저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면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제출했던 경영방어권 요구안이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계는 올 초 경사노위에 △노조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제도 폐지 △노조의 사업장 점거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쟁의행위 찬반투표 절차 개선 등을 제안했다. 재계는 특히 대체근로를 허용해야 노조가 과도한 요구를 지렛대 삼아 습관적 파업으로 넘어가는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당노동행위의 처벌 조항에 대해서도 노조가 사측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이슈화하는 일이 많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재계의 핵심 요구안들은 노동계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있다. 노동계는 노동기본권을 부정하고 사용자 공격권을 확대하는 주장이라며 언급 자체를 거부하는 모습이다. 민주노총은 “대체근로 허용과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는 단체행동권을 봉쇄하자는 주장”이라며 “부당노동행위제도 개선은 단결권 파괴를 넘어 노조 파괴를 정당화시켜달라는 요구”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 역시 대체근로 허용 등에 대해 소극적이다. 헌법상 노동3권의 침해는 물론 국제노동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경사노위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박수근 한양대 교수는 “국제노동기구(ILO)도 파업시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건 국제노동기준에 반한다고 여러 차례 권고했다”며 “헌법상 노동기본권의 관점에서 단체행동권의 본질을 침해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노동계를 배려한 친노동정책이 노조의 사업장 점거를 비롯한 폭력적 투쟁을 암묵적으로 키워왔다고 분석한다. 과거 사측의 각종 부당노동행위나 폭력적 노무관리가 대결적 노사관계를 고착화하는 데 어느 정도 원인제공을 한 것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노동계의 노동운동이 개별 사업장의 정규직 노동자의 근로조건에만 묻히면서 노동시장의 왜곡을 바로잡는 문제를 제기하는 데는 소홀했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한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원·하청 임금 격차, 고용형태에 따른 안정성의 차이 등을 노사관계가 바꿔줘야 하는데 노사 모두 문제의식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해 노사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불균형적”이라며 “그저 노사 갈등으로 비치면서 그들만의 싸움이 되고 관심도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경영계나 노동계나 서로를 굴복시키고 무릎 꿇리겠다는 식의 대립적 구도의 접근으로는 노사관계가 현재 상황에서 절대 나아지기 어렵다”며 “노조가 강한 독일은 노사가 서로를 부부에게나 쓰는 ‘파트너’로 칭한다. 서로 폭력을 걷어내고 신뢰를 조성할 수 있는 환경부터 닦아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준호·박한신기자 violat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