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인 18일 청와대는 물론 정부, 여야 정치권이 일제히 ‘DJ 정신’을 강조했다. 특히 지난 1998년 김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의 공동선언을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이 곳곳에서 쏟아져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에 대한 비난수위를 낮추고 협상을 강조한 데 이어 이날 다시 한 번 합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고조됨에 따라 한일 강대강 대치 국면의 수위가 낮아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한일 양국이 외교적 돌파구를 찾기 위해 물밑접촉을 시작한 게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레 내놓고 있다.
김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은 이날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거행됐다. 정부 대표로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국회에서는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5당 대표가 참석했다. 청와대에서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자리를 함께했다.
추모의 글을 가장 먼저 내놓은 사람은 문 대통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추도식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김 전 대통령의 여러 업적을 기리며 무엇보다 오부치 총리와 함께 발표했던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주목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이 걸어갈 우호·협력의 길에도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며 “양국 국민이 역사의 교훈을 공유하며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는 약속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공동선언은 김 전 대통령이 도쿄를 직접 찾아가 정상회담을 한 후 ‘상호 인정과 존중 속에 공동번영과 협력을 위해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는 뜻을 같이 밝혔던 것으로 한일관계의 큰 전환점으로 꼽힌다.
문 의장 역시 추도사에서 공동선언에 대해 “한일 양국의 과거, 현재, 미래를 꿰뚫은 놀라운 통찰력과 혜안”이라고 강조했다. 심지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까지 “한일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자는 선언이었다”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처럼 극으로 치닫던 대일 강경 기조가 광복절과 김 전 대통령 10주기를 거치면서 완화 조짐을 보이자 외교적 출구 찾기를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일본 언론조차 한국의 광복절, 일본의 종전기념일을 기점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줄 호혜 관계를 유지하자”는 의견을 내는 상황이다.
다만 아직 문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감정대립이 너무 오랫동안 지속됐다는 점에서다.
이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그간 정상외교를 분담해온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한일관계 ‘연착륙’ 역할을 맡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목되는 일정은 다음달 말 뉴욕 유엔총회와 오는 10월 일왕 즉위식이다. 이 총리가 한국 대표로 참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누구보다 김 전 대통령의 대일외교를 잘 아는 ‘지일파’ 이 총리는 되레 이날 추도사에서 한일관계를 언급하지 않는 등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총리는 공동선언에 대한 평가 없이 “대통령님의 ‘조화’와 ‘비례’의 지혜는 더욱 소중해졌다. 저희도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고만 말했다./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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