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서울에서 출발할 때 이번에는 경북 영덕군 북동쪽의 지품면과 달산면을 훑어 용추폭포와 팔각산, 산성계곡과 옥계계곡을 둘러볼 참이었다. 그런데 서울을 떠나기 전 일기예보를 검색해보니 오후부터 비가 예보돼 있었다. 도착하면 오후가 될 텐데 비가 얼마나 올지, 사진은 찍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지난해 영덕에 왔을 때도 비가 오고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사진촬영은커녕 내 한 몸 가누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조급한 마음으로 서둘러 도착한 영덕의 하늘은 먹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제천으로 빠져나와 영덕에 들어서 처음 들른 곳은 고래불해수욕장. 영덕에 올 때마다 이름은 항상 들었는데 실제로 와 본 것은 처음이었다. 철 지난 해수욕장에 굳이 들른 이유는 산성계곡으로 가는 도중에 비라도 쏟아지면 이번에도 아무런 소득 없이 귀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해수욕장에 아무도 없으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을 안고 백사장으로 들어선 마음이 하늘에 통했는지, 해수욕장에는 피서객 50~60명이 바닷물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 해수욕장의 이름이 ‘고래불’인 것은 고려말의 유학자 목은 이색이 해수욕장 서편의 상대산에 올라서 바다 쪽을 바라보다가 고래가 바다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목도하고 붙인 데 따른 것이다.
철 지난 해수욕장을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이곳이 무더운 여름철 물놀이를 하려는 사람들만을 위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8㎞에 이르는 백사장 뒤로는 방풍림을 겸한 솔밭이 병풍처럼 버티고 서 풍광이 아름다운데다 인근에는 대규모 야영장이 조성돼 있어 계절에 관계없이 캠핑족들이 몰린다. 야영장 뒤편 솔숲에는 텐트 110동을 칠 수 있는 사이트와 오토캠핑 13동, 카라반 사이트 25동 모두 148동의 캠핑사이트가 마련돼 있다.
영덕은 자타가 공인하는 대게의 고장이다. 대게라는 이름은 크기가 커서가 아니라 게의 다리가 대나무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영덕군 북쪽에 있는 울진이 해마다 2월 말~3월 초에 대게 축제를 하는 것과 달리 영덕군은 3월 말 영덕대게축제를 연다.
그 이유는 영덕에서 잡히는 대게의 맛이 이때 최고조에 이르기 때문이다. 동행한 김점태 해설사는 “영덕군 강구면과 축산면 사이 바다 바닥에는 펄이 전혀 없고, 고운 모래가 깔려 있는데 이곳에서 3~4월에 잡힌 게가 살이 꽉 들어차고 맛이 좋다”며 “대게의 어획 시기는 11월에서 이듬해 5월 사이로 지금 판매하는 것들은 러시아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덕대게축제는 처음에는 면 단위 축제로 시작해서 조금씩 세를 불려 지난해 4월부터 국가 지정 축제가 됐다”며 “고려 태조 왕건의 진상품이기도 했던 영덕게는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 개최됐던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만찬에 오른 특산품”이라고 자랑했다. 비를 맞으며 찾은 강구항 일대에는 대게를 요리해 판매하는 식당 100여곳이 성업 중이었는데 점포 앞을 지날 때마다 종업원들이 손을 흔들며 “들어오라”고 호객을 했다.
그들의 말을 듣고 ‘비를 피해 식당에 들어가 볼까’ 생각하다 영덕대게의 맛은 제철에 보기로 하고 해파랑길로 향했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800㎞의 도보 길로 이 중 영덕을 지나는 구간을 ‘영덕 블루로드’라고 부른다. 블루로드는 남쪽의 대게누리공원에서 북쪽의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구간으로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고래불해수욕장 인근의 괴시리전통마을은 목은 이색의 출생지로 200년 된 전통가옥들이 세월을 견디며 자리를 틀고 있다. 괴시리라는 지명 역시 이색 선생의 작품으로 선생은 이 마을의 지형이 중국에 있는 괴시라는 지역과 흡사해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영양남씨 괴시파 종택과 해촌 고택, 목은 이색기념관 등이 보존돼 있다. 100여채의 전통고택에 3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글·사진(영덕)=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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