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폭력에 매우 분노하고 있습니다. 경찰에게 ‘노(No)’라고 말하는 것이 오늘 집회 참석의 가장 큰 목적입니다.”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최고조에 달했던 한 달 전, 당시 집회가 열린 빅토리아공원에서 기자가 직접 만난 한 시위 참가자의 목소리에서는 깊은 분노와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검은 옷을 입고 모여든 시민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을 향해 무차별하게 자행된 경찰의 폭력이 시위에 참여하게 된 결정적 계기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6월부터 이어진 홍콩 시위에서 현지 경찰이 시민들에게 가한 폭력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곤봉을 휘두르는 것은 기본이고 최루액과 물대포가 번번이 등장했다. 지난달에는 한 여성이 경찰이 쏜 빈백건(알갱이가 든 주머니)에 맞아 실명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폭력진압 논란 속에 당초 평화적 집회와 행진으로 시작했던 시위대도 폭력화하기 시작했다.
시위 사태를 통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캐리 람 행정장관은 일단 한발 물러났다. 이달 초 송환법 철회를 결정한 데 이어 시민들과의 대화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16일 행정장관 직속기구에 ‘대화플랫폼’을 추진할 조직을 신설한 데 이어 이르면 다음주 야당·시민과의 첫 공개대화를 가질 계획이다.
하지만 이러한 유화적 제스처에 어느 정도 진정성이 담겼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람 장관이 대화플랫폼 신설을 발표하기 하루 전 홍콩 경무처장은 “법치주의를 무너뜨리는 무법에 맞서 강한 책임감과 용기·결의를 보여줬다”며 경찰의 시위 진압을 치하했다. 홍콩경찰대원협회는 시위대를 향해 실탄까지 사용할 수 있다고 직접 경고를 날린 상황이다. 경찰의 폭력을 사과하기는커녕 오히려 옹호하는 정부가 100일 넘게 이어지는 갈등의 돌파구를 어디서 찾을지 의문이다.
진정 어린 사과 없는 대화는 속 빈 강정일 뿐이다. 정부가 경찰이 행사한 폭력은 묵인한 채 시위대의 폭력만 부각하는 내로남불식 자세로 마련하는 대화의 장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보여주기식’ 행사로 끝날 공산이 크다. 남는 것은 더 큰 반발과 끝나지 않는 시위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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