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재선을 위해 한반도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의혹’이라는 암초를 만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의 트럼프 대통령 탄핵조사 착수는 미 정가의 모든 관심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임박한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에도 먹구름이 드리우게 됐다.
우크라이나 의혹은 비핵화 협상과 별개지만 탄핵정국이 시작되면 북미정상회담은 미국 조야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때도 북한 비핵화 협상보다 미 국내 정치 상황을 중시하며 사상 초유의 ‘노딜’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당시 외교가에서는 노딜 결정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의 비위행위를 폭로하던 마이클 코언의 미 의회 청문회를 염두에 둔 전략적 행보였다는 해석이 쏟아졌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탄핵이 급물살을 타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상황은 북한뿐만 아니라 미국과 관련된 모든 관계에 영향을 주는 것”이라며 “미국과 이란 갈등, 미중 무역분쟁 등 트럼프 행정부의 굵직한 외교적 이슈가 많기 때문에 북한만 특별히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관건은 북한이 영변 플러스알파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빅딜’ 요구를 수용할지 여부다. 미국 조야에서는 영변 핵 시설 폐기만으로는 완전하고 최종적인 북핵 폐기(FFVD)에 실패한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 없이 협상에 속도를 낼 경우 정적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며 “지난 하노이 노딜 결정을 민주당과 언론이 호평했다는 사실을 볼 때 북한에 대한 강경론을 취할 수 있다”고 관측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를 벗어날 정도의 외교적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영변 플러스알파를 내놓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양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은 “탄핵 여부를 떠나 북한은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에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비핵화 방식과 관련해 북미 간의 입장 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실무협상이 열리더라도 합의문을 만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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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 이슈를 덮기 위해 깜짝 3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각종 돌출 행동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높았던 것은 경제가 좋았기 때문인데 지금 미국 경제가 정점을 찍고 꺾이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이익 관점에서 보면 내부적으로 몰리는 게 역설적으로 외부적 성과를 얻고자 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이란과 베네수엘라 외교가 다 실패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어볼 것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면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졸속으로 3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할 경우 한반도 비핵화는 더 어렵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코너에 몰리면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 등 파격적인 제안을 하거나 북한이 원하는 방식으로 경솔한 협상에 나서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진흙탕 싸움이 시작되면 북한과 쫓기듯 합의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움직임과 관련해 촉각을 곤두세우며 사태를 주시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 한미관계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박 교수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은 미 의회에서도 트럼프 행정부처럼 원했던 일”이라며 “48억달러(약 5조7,000억원)는 의회도 너무한다고 하지만 방위비 분담금 인상 기조는 계속 유지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예상했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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