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칠레의 토목기사 알베르토 이시도르(62)씨는 수술을 위해 부인, 세 딸과 지난 3월 25일 한국에 온 지 6개월 보름만인 10일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지난해 9월 극심한 피로와 황달 증상으로 자국 병원을 찾았다가 말기 간경화와 간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간 문맥과 담도가 혈전과 종양으로 막혀 간이 제 기능을 못해 황달·복수가 심한 상태였다. 칠레에서 뇌사자 간이식 수술을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또 큰 체격(키 182㎝, 몸무게 92㎏) 때문에 딸 1명의 간을 이식받는 1대1 생체간이식으로 건강 회복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는 미국에서도 간이식 수술이 어려우니 요양병원에서 삶을 정리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좌절한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준 건 서울아산병원에서 두 차례 간이식 연수를 받은 간이식외과 전문의 라울 오레아스. 라울은 “6,000여건이 넘는 간이식 수술 경험과 말기 간암 환자를 대상으로 97%의 세계 최고 간이식 성공률을 보이는 서울아산병원에서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이 전 세계 수술의 95%를 웃도는 500례 이상의 2대1 생체간이식 수술을 해왔고 성공률도 세계 최고라는 걸 확인한 알베르토와 가족은 망설임 없이 한국행을 결심했다. 2대1 생체간이식은 한 사람의 간 기증으로 충분하지 않거나 남은 간으로 기증자의 생명에 조금이라도 위험이 따를 경우에 적용한다. 라울 전문의는 알베르토씨의 진료기록·영상자료와 함께 수술이 가능한지 알려달라는 e메일을 간이식팀에 보냈고 “가능하다”는 답장을 받았다.
아내, 세 딸과 3월 25일 한국을 찾았을 때 알베르토씨는 간부전으로 황달 수치가 심하게 높았고 대량의 복수와 혈액응고 기능장애, 간성혼수 증상까지 보였다. 그래서인지 혈액형·조직이 가장 잘 맞는 첫째(바바라 크리스티나·34)·셋째 딸(아니타 이시도라·23)의 간 좌엽과 우엽을 이식받은 뒤에도 몇 차례 고비를 맞았고 7월에야 중환자집중치료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길 수 있었다.
귀향을 앞둔 알베르토씨는 “망설임 없이 간 일부를 기증한 두 딸과 오랜 기간 간병으로 고생한 아내에게 고맙고 미안하다. 삶과 행복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준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 의료진은 평생 나와 가족에게 감사와 감동으로 기억될 것”이라며 연신 “무치시마스 그라시아스(정말 감사합니다)”를 되뇌었다.
그의 막내딸 아니타는 “웹사이트에서 서울아산병원 간이식팀의 뛰어난 성적, 전 세계 전문가들이 찾아와 연수를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아버지를 살릴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졌었는데 현실이 돼 기쁘고 감사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기훈 간이식·간담도외과 교수는 “말기 간경화와 진행성 간암으로 복수가 많이 차 있고 간 문맥·담도가 막혀 있었지만 오랜 생체간이식 경험으로 좋은 결과를 확신했다”며 “이식 후 간 기능이 예상 만큼 빨리 회복되지 않았고 몇 차례 고비도 있었지만 마취통증의학과, 중환자·병동 간호팀, 감염내과팀 등 의료진 모두가 함께 노력한 끝에 좋은 결실을 맺게 됐다”고 말했다. 이승규 석좌교수는 “(라울 전문의와 알베르토 가족이) 미국이 아닌 지구 반대편 한국을 선택한 것은 우리나라 간이식 수준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라며 “전 세계 말기 간질환자가 믿고 찾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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