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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본 '미숙', 남자가 본 '대현'...영화 ‘82년생 김지영’

女 딸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엄마 보며 눈물 펑펑

男 김지영 남편의 삶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아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오는 23일 개봉을 앞둔 영화 ‘82년생 김지영’. 지난 2016년 페미니즘 열풍이 불며 130만 부 이상 팔린 동명의 원작 소설을 소재로 삼은 작품입니다. 개봉 전부터 논란의 중심에 서며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댓글, 평점 테러에 시달리기도 했는데요. 작중 주인공과 달리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은 미혼의 여기자와 대학 시절 ‘여성학 B+’라는 어중간한 성적을 받은 남기자가 영화를 함께 보았습니다. 과연 영화는 소설처럼 남녀 감수성의 차이를 드러내게 할까요.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딸 안쓰러워 하는 엄마 이야기에 눈물 펑펑”-미혼 여기자의 시선

스크린셀러가 원작을 그대로 반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과감한 삭제와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새로운 감성과 가치를 담는 창작물이 될 수 있죠.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소설의 커다란 줄기만을 따왔습니다. 1982년 4월 1일생인 주인공 김지영(정유미)은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직장에선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당했고, 결혼 임신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될 수밖에 없었죠. ‘독박육아’로 우울증을 앓던 그는 급기야 다른 사람으로 ‘빙의’해 여성으로서의 힘들고 고달팠던 삶을 토로하고 때로는 남편 대현(공유)와 가족들에게 호통을 칩니다.

영화는 딱 여기까지만 소설 ‘82년생 김지영’입니다. ‘독박육아’와 일상적인 성희롱 등 여성들을 분노케 한 에피소드들을 과감하게 축약했습니다. 생생한 에피소드로 감정을 추동하게 한 소설에 비해 영화는 보다 잔잔하고 슬픈 톤으로 관객을 울립니다.

육아로 인한 우울증 등에 그다지 공감을 하지 못한 기자의 눈물샘을 자극한 캐릭터는 지영의 엄마 미숙(김미경)이었습니다. 오빠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돈을 벌고, 결혼 후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삶은 없었던 미숙은 딸이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기를 바랐던 ‘우리 모두의 엄마’를 연상시킵니다. 특히 미숙이 아들 지석의 한약을 사온 남편에게 “아픈 지영이 약을 사와야지, 왜 지석이 약이냐”며 약을 내동댕이치고 오열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무너집니다. 남녀차별에 숨죽이고 살았던 그가 자신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딸의 모습에 안쓰러워 하는 장면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남편 대현은 소설과 달리 지영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안쓰러워하지만, 지영의 삶을 경험해 보지 못한 그는 ‘따뜻한 제3자’ 이상이 될 수 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기자가 기혼이라면 ‘저 정도 남편이면 고맙지’라고 생각했을까 싶네요./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사진제공=롯데엔터테인먼트


■“ ‘지영’ 그리고 ‘대현’을 위한 ‘82년생 김지영’”-여성학 B+ 남기자 시선

소설에서 한 발 나아간 결말 덕분에 김지영의 어려움은 남편 대현의 문제로 확장됩니다.

부푼 꿈을 안고 홍보대행사에 입사했지만 결국 집안에 앉아 빨래를 개고 있는 지영과 대현의 가정에 남은 것은 눈치와 미안함입니다. 외벌이 남편인 대현은 “다녀오면 책상이 사라진다”는 말에 출산휴가를 낼 결심을 못하고 눈치만 봅니다. 나이 든 친정엄마는 베이비시터를 구해보지만 이내 실패하고 우울해하는 지영이 안쓰럽기만 합니다. 지영은 어렵게 구한 일할 기회를 우울증 때문에 포기한 뒤로는 재취업 기회를 준 회사 선배, 그리고 우울증을 돌봐온 대현에게 미안한 마음이 솟구칩니다.

지영과 대현이 겪는 어려움은 누구 한 사람을 탓할 수 없는 구조의 문제로 확대됩니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지영의 어려움이 해결되는 과정도, 그 뒤에 따라오는 혜택도 82년생 김지영만의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영화를 연출한 김도영 감독은 “‘82년생 김지영’을 통해 우리가 어떠한 곳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될까. 그런 고민을 나누고 공감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작품은 여성의 어려움을 넘어 개개인의 선의로는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들을 안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지영’과 ‘대현’에게 잔잔한 위로를 전합니다. 미안함을 찾을 수 없는 시어머니와 일부 직장 동료들 역시 공고하게 내려온 제도의 피해자라는 점, 그렇기에 이들 역시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다는 점까지 보듬었다면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한민구기자 1mi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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