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정규대회에서 우승했던 저스틴 토머스(26·미국)가 2년 만에 다시 한글이름이 새겨진 트로피를 받았다. 2017년에는 마크 레시먼(호주)과 2차 연장 끝에 우승했고 올해는 뉴질랜드동포 대니 리와 숨 가쁜 결투 끝에 우승상금 175만5,000달러(약 20억7,000만원)를 거머쥐었다. PGA 투어 통산 11승째. 이중 4승을 아시아(2승은 말레이시아)에서 올렸다.
세계랭킹 5위 토머스는 20일 제주 서귀포의 클럽 나인브릿지(파72)에서 끝난 더 CJ컵(총상금 975만달러)에서 4라운드 합계 20언더파 268타로 18언더파를 기록한 대니 리를 2타 차로 따돌렸다. 지난 8월 BMW 챔피언십 이후 두 달 만의 우승이다. 대니 리와 공동 선두로 4라운드를 출발한 토머스는 이날 버디 7개(보기 2개)로 5언더파 67타를 보탰다. 선두에서 최종 라운드를 맞은 기록이 이번 대회까지 총 11번인데 그중 8차례 우승을 차지하며 ‘철벽’ 면모를 과시한 셈이다. 토머스는 2017년 더 CJ컵 초대 챔피언을 차지하고 몇 달 뒤 생애 처음으로 세계랭킹 1위에 올랐던 기분 좋은 기억이 있다. 최근 출전한 4개 대회에서 두 차례 우승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그는 2019~2020시즌 첫 승을 제주에서 신고하면서 세계 1위 탈환을 향해 힘찬 걸음을 내디뎠다.
17번홀(파3) 보기 뒤 2타 차 선두로 맞은 마지막 18번홀(파5·568야드)에서 토머스는 두 번째 샷을 앞두고 불과 184야드를 남겨 8번 아이언으로 무난하게 2온에 성공했다. 토머스는 178㎝의 평범한 키에도 드라이버 샷으로 평균 312야드를 날리는 장타자다. 다운스윙 시작과 동시에 오른발 뒤꿈치를 떼고 이후 왼발마저 지면에서 떨어뜨리는 ‘까치발 스윙’이 전매특허다.
전날 18번홀에서는 두 번째 샷을 물에 빠뜨려 1타를 잃었지만, 이번에는 한 치의 실수도 없었다. 동타를 만들 수 있는 대니 리의 이글 퍼트가 홀을 맞고 나온 뒤 토머스는 1m쯤 되는 버디 퍼트를 넣고 대회를 마무리했다.
경기 후 토머스는 “클럽 나인브릿지의 코스가 나와 잘 맞는다. 14번홀(파4) 버디 퍼트(2.5m)로 1타 차로 앞서 간 게 결정적이었다”며 “대니 리의 마지막 홀 이글 퍼트가 홀을 돌아 나왔을 때 솔직히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솔직한 심경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아직 한글로 이름 쓰기를 못하지만 내년까지는 연습해서 쓸 수 있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2015년 7월 그린브라이어 클래식 우승 뒤 4년여 만의 2승에 도전했던 세계 162위 대니 리는 정교한 쇼트게임을 앞세워 막판까지 접전을 이어갔으나 결과적으로 뒷심이 모자랐다. 15·16번홀(이상 파4)에서 티샷과 두 번째 샷을 매번 벙커에 빠뜨린 끝에 연속 보기를 적으면서 추격이 어려워졌다.
한국 선수 중에서는 안병훈이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첫날 단독 선두였던 그는 13언더파 공동 6위로 마쳤다. 49세 최경주의 분전도 돋보였다. 이글 1개와 버디 4개, 보기 1개로 5타를 줄여 순위를 10계단 끌어올린 그는 공동 16위에 오르며 그레엄 맥도웰(북아일랜드)·이안 폴터(잉글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2018~2019시즌 신인상 임성재는 5언더파 공동 39위를 기록했다. 디펜딩 챔피언인 세계 1위 브룩스 켑카는 무릎 통증 때문에 3라운드를 앞두고 기권했다.
한편 PGA 투어와 10년 계약의 네 번째 해인 내년부터는 새 코스에서 새 연대기를 펼칠 가능성이 있다. CJ그룹 측과 골프장 업계에 따르면 더 CJ컵은 내년 경기 여주의 해슬리 나인브릿지(이하 해슬리)로 대회장을 옮기는 방안을 놓고 곧 PGA 투어 측과 논의를 시작한다. 해슬리 측은 이미 수년 전부터 더 CJ컵 개최를 준비해왔다. 2009년 개장한 해슬리는 클럽 나인브릿지와 설계자(데이비드 데일)가 같고 모든 홀의 페어웨이와 그린을 최고급 잔디인 벤트그래스로 꾸몄다. 클럽리더스포럼 선정 세계 100대 플래티넘 클럽에 2013년 한국 최초로 선정됐으며 2017년에는 전체 26위에 올랐다. 2011년부터 3년간 한국프로골프(KPGA)·아시안 투어 최경주 CJ인비테이셔널이 이곳에서 열렸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차로 1시간 남짓, 인천공항에서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접근성이 가장 매력적이다. 더 CJ컵은 올해까지 2년 연속으로 4만명이 넘는 갤러리를 제주로 모았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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