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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혁신성장하려면 노동·교육 등 사회시스템 획기적 변화 필요"

<김문겸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장>

대량생산체제서 만들어진 노동정책 4차산업혁명시대엔 안맞아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 소주성 애꿎은 자영업자 등 피해초래

규제·상속세 등으로 제조업 해외이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창업자에게 돈이 아닌 '기회와 경험'을 주는 발상의 전환을





김문겸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장이 지난 1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등 선한 의도에서 추진한 노동정책들이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정책들을 과감하게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 경기침체 등 불확실성이 증폭되면서 한국 경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경직된 노동환경과 각종 규제는 기업들의 정상적인 경영활동마저 위축시키고 있다. 지난 2011년부터 6년간 중소기업옴부즈만을 맡아 규제 혁파에 발 벗고 뛰어온 김문겸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장과 만나 한국 경제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주제로 얘기를 나눴다. 김 원장은 18일 숭실대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개방경제 체제에서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노동 투입비용이 늘어나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며 “지금이라도 급진적 노동정책이 초래할 부작용을 인정하고 정책전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6년간의 중기옴부즈만 생활을 접고 학교로 돌아온 지 2년이 지났는데 어떻게 지내셨는지.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면서 기회가 많아진 것 같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우리에게 익숙했던 기회는 사라지고 그동안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낯선 환경이 다가오는 것 같다. 오히려 요즘 젊은이들이 살아가기에 녹록지 않다는 안타까움이 커져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열성을 쏟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내년에 ‘글로벌 앙트프리너십(entrepreneurship·기업가정신) 학과’를 만들려고 한다. 비즈니스 모델 설정과 협상능력 배양, 글로벌 기업설명회(IR) 스킬 등 실질적인 강좌를 넣을 예정이다. 1년짜리 경영학석사(MBA) 과정도 구상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9시간씩 강의하면 연간 450시간이 확보되니 충분히 가능하다.

-‘글로벌 앙트프리너십’에 방점을 찍은 것 같은데.

△21세기 국가의 경쟁력은 산업의 경쟁력이라기보다 개별기업의 경쟁력이다. 글로벌 경제를 선도하는 것도 특정 산업군이 아닌 구글이나 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이다. 그렇다면 우리처럼 대학에 몸 담고 있는 교수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바로 사람을 키우는 일을 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갈 유니콘 기업을 만들 수 있게 창의적인 인재를 키워야 한다.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인재들이 사회로 진출해 창업을 하고 스타트업을 벤처기업으로,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7월로 중소벤처기업부가 청에서 부로 승격된 지 2년이 됐다. 공과(功過)를 평가한다면.

△중소기업 분야를 오래 연구했던 교수들이나 중소기업인들이 부처 승격 소식을 가장 반겼던 것은 정책을 만들고 부처 간 조정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간 산업부는 자동차·조선 등 산업분류를 기준으로 정책을 집행했고 중소기업청은 소상공인·벤처·중소기업 등 영역별로 나뉘어 있어 접근법 자체가 다르다. 하지만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후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모든 부처가 일자리안정자금 홍보에 열을 올리면서 중기부 역시 ‘고용노동부 2중대’ 역할에 그쳤다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대목이다. 부처로 승격했으면 큰 줄기에서 정책을 만들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전략이 나와야 했는데 그런 부분이 부족했다. 그나마 박영선 장관이 와서는 중소기업의 역할을 새롭게 규정하면서 제 영역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 대표적인 게 스마트팩토리인데, 기존에 산업통상자원부 관할이었던 스마트팩토리를 중기부 영역으로 흡수한 것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스마트팩토리의 정책지원 대상은 중소기업이다. 일할 사람 구하기 힘들고 신규 채용도 쉽지 않은 중소제조업이 스마트팩토리 정책의 수혜 대상이다. 그렇다고 중기부가 온전히 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소기업 현장에서 각종 데이터가 모이면 이를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인공지능(AI)으로 분석, 관리하는 단계로 진화해야 하는데 이는 중기부의 영역을 벗어나 산업부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넘어간다. 스마트팩토리가 궁극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빅픽처(큰그림)를 잘 디자인해 연관된 부처끼리 긴밀히 협의한 뒤 (다른 부처에) 넘길 것은 넘기고 협력할 것은 협력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제 등 노동 문제를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문재인 정부는 재벌 중심의 성장 모델이 끝났다고 규정하며 혁신적인 경제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게 바로 ‘혁신성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는 물론 교육과 노동 등 사회 전체의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변해야 한다. 혁신형 인재, 즉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인재를 키우고 혁신적 기업문화가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으로 녹아들면서 유연한 산업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려면 기업을 움직이는 인적 자산, 노동력을 탄력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중소기업에서 일할 사람, 대기업에서 일할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대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도 중소기업으로 옮길 수 있고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스카우트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노동정책은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재벌에 편입됐고 대량생산 체제에서 배태된 노동조합의 입맛에 맞게 고안됐다. 우리나라의 360만 기업 중 대기업집단은 4,500여개에 불과하고, 직원 수 10인 미만의 소기업이 310만개에 달한다. 그런데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제는 채 1만개도 안 되는 대기업에 소속된 노조 입맛대로 만들어진 것 아닌가. 소득주도 성장을 하겠다고 이렇듯 급진적인 노동정책을 밀어붙였는데 결국 직접적인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아르바이트생들과 단순반복작업 근로자, 그리고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더구나 일자리가 급속히 줄어들면서 비정규직 양산 문제나 소득 양극화 심화 등 노동 시장의 질은 형편없이 낮아졌다.

김문겸 숭실대 중소기업대학원장이 지난 1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 등 선한 의도에서 추진한 노동정책들이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시대에 맞지 않은 낡은 정책들을 과감하게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선한 의도로 정책을 만들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린다.

△옴부즈만 사무실이 서울 안국역 근처, 인사동 초입에 있다. 원래 인사동은 지필묵과 골동품·서화·표구를 파는 곳인데 2017년 당시 이들 품목을 판매하는 매장 중 1층에 자리한 곳이 4곳밖에 없었다. 지금은 더 줄었을지도 모른다. 서울시가 인사동을 문화특구로 지정해 차 없는 거리도 만들고 다양한 지원에 나섰지만 결국 임대료가 오르면서 지금은 대기업 계열의 화장품 매장이나 카페만 즐비한 형편이다. 의도는 좋았지만 실력이 없다 보니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고, 애꿎은 자영업자들만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나 주 52시간제 시행에 따른 부작용 역시 개방경제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끼워 맞춰 생기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주요국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가격 결정의 중요한 요소인 노동 가격을 올려버리면 당연히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옛 모습을 잃어버린 인사동처럼 노동 문제도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올려놓고 다시 깎는다고 하면 누가 동의하겠는가. 지금이라도 급진적인 노동정책을 수정, 보완해야 한국 경제의 추락을 막을 수 있다.

-중기옴부즈만으로 일하면서 규제를 없애는 데 힘썼는데 여전히 기업 활동을 옥죄는 규제들이 많다.

△규제의 품질이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해준다. 고품질의 규제를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 물론 포지티브 규제 역시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있어야 하는 규제가 없으니 필요에 의해 나열식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일일이 규제할 필요가 없어진다. 기존 규제로 막아서는 새로운 산업을 키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산업에 대해 우선 허용하고 필요하면 나중에 규제하는 방식의 ‘포괄적 네거티브’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 민간의 창의와 창발성을 키우고 개개인의 자유와 다양한 사업기회를 늘리려면 우선은 허용하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의 수준이 높을수록 네거티브 규제로 갈 수밖에 없다.

-정부의 역할, 특히 벤처기업을 육성해야 하는 중기부의 역할 재정립이 필요해 보이는데.

△중기부는 출범 초기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지원하면 정부가 매칭하는 등의 ‘넛지’ 방식으로 상생협력 모델을 전국에 확산하려 했고 일정 정도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된다. 벤처 정책도 마찬가지다. 한국식 ‘넛지’가 필요하다. 정부 주도로 성장한 나라가 어떻게 하루아침에 실리콘밸리처럼 혁신적으로 바뀔 수 있겠나. 오히려 정치(精緻)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예비 창업가들이 비즈니스 영역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대기업이나 벤처기업과의 인적 교류를 늘리는 등 돈이 아닌 ‘기회와 경험’을 줘야 한다.

-요즘 한국을 떠나는 중소기업인들이 많다.

△제조업까지 탈출하는 현 상황은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각종 규제도 문제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도 ‘탈한국 현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속세가 없는 나라는 캐나다·호주·스웨덴 등 10곳이 넘는다. 여기에는 기업에 대한 시선에서 차이가 있다. 서구에서는 기업을 사회의 자산으로 보고, 우리나라는 개인의 자산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짙다. 이런 이유로 부의 대물림에 대한 비판적 시선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성장시키는 주체가 기업이라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기업인들이 열심히 사업할 수 있게 만드는 모티베이션(motivation·동기) 중 하나가 회사를 키우는 보람, 애써 키운 회사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기쁨이라는 인간의 본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정의·평등·공정 등의 가치에 함몰돼 명분을 중시하다 보면 현실을 정확하게 볼 수 없다. 기업들의 기(氣)를 살리고 이들이 신명 나게 사업할 수 있도록 작은 정부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He is…

1956년 대전에서 태어나 숭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 대학원 경영학석사, 일리노이대 대학원 재무관리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숭실대 경영대에서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로 일하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2~3대 중소기업옴부즈만(차관급)을 맡아 중소기업 현장의 규제를 해소하는 데 힘을 쏟았다. 6년 만에 학교로 돌아와 중소기업대학원장으로서 후학을 양성하며 벤처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글로벌경영학회장을 맡는 등 활동반경을 넓히고 있다. ‘중소기업 우문현답’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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