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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절반도 못쓴 사업에 내년 예산 퍼주기

집행 39% 미달 264개 사업에

정부, 예산 13% 늘려 5조 편성

세수부족에 적자국채 느는데

혈세 무분별 지원 재검토해야





정부 부처들이 올해 각종 사업 지연과 불협화음으로 재정을 평균 38%밖에 집행하지 못한 264개 사업에 무더기로 내년 예산을 증액 편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적자국채를 60조원어치 발행해 내년 슈퍼예산(513조원)을 꾸린 정부가 부처별로 쓰지도 못할 혈세를 무분별하게 챙겨 금고에 쌓아두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정된 국민의 세금이 쓰이지도 않는 사업에 계속 배정되면 다른 예산에 덜 배분되는 악순환이 거듭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각 부처의 도덕적 해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정부 예산을 감시하는 국회예산정책처와 야당은 슈퍼예산에 대한 ‘현미경 검토’로 집행률이 저조한 사업의 예산을 대거 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28일 국회예정처가 발간한 ‘2020년도 예산안 위원회별 분석’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집행률이 50% 미만인 ‘연례적 집행실적 부진사업’ 264개의 예산이 올해 4조5,384억원에서 내년에는 5조1,262억원으로 13.0%(5,877억원)나 늘어났다. 264개 집행실적 부진사업의 올해 배정 예산 대비 집행률은 38.8%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내년에는 이 사업들에 돈을 더 쓰라며 전체 예산증가율(9.3%)보다 더 높은 13%의 예산을 늘린 셈이다.

정부 중앙부처들의 예산 챙기기는 정도가 더 심했다. 중앙부처가 직접 추진하는 사업 144개는 집행률이 9월 기준 17.6%에 불과했다. 하지만 예산은 올해 2조7,347억원에서 3조1,688억원으로 15.9%(4,341억원) 늘었다. 특히 이 가운데 89개 사업의 예산이 사업추진 지연과 집행사유 미발생, 주민갈등 등으로 쓰이지 않았는데도 내년 예산이 깎이지 않거나 오히려 증액됐다고 예정처는 판단했다. 김일권 예정처 예산분석실장은 “세수 부족과 적자국채를 늘리는 점에서 효율성과 재정지속 가능성에 대한 주의가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며 “연례적 집행부진 사업은 부진 사유와 해소 여부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지난 2015년 흑산공항이 국토교통부의 ‘제5차 공항개발 중장기 종합계획’에 울릉공항과 함께 신규 사업으로 올랐다.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 길이 1,160m, 폭 30m의 활주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활주로가 깔리면 50인승 중소형 비행기가 뜨고 내리며 전국의 공항에서 1시간 안에 닿을 수 있다. 기상악화로 인한 잦은 선박 결항과 관광 활성화가 명분이었다. 하지만 지역 특혜사업과 환경성 시비 논란이 일었고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는 그 후로 지금까지 국립공원 내에 이 공항을 허가할지를 결론을 못 내고 있다.

그런데도 국토부는 추진될지도 모르는 이 사업에 내년 예산을 지난해보다 400% 늘어난 50억원을 배정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이 사업을 올해 9월 기준 사업 예산 집행률이 50%를 밑도는 집행실적 부진 사업으로 꼽았는데 예산은 무려 5배가 늘어난 것이다. 예산 증액 사유에 대해 정부는 “공사 착수를 위한 보상비와 공사비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국립공원위가 어떤 결론을 낼지도 모르는 사업에 대해 보상부터 하겠다며 예산을 배정한 것이다.



예정처에 따르면 이처럼 혈세를 투입했지만 사업이 지연되며 예산 집행률이 올해 50%(평년 70%)를 밑도는 사업만 9월 기준 264개, 4조5,384억원에 달한다. 9월까지 이 사업들의 집행률은 38.8%(약 1조7,600억원)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년 513조원의 ‘슈퍼예산’을 짜면서 이 사업들에 대한 예산을 13%(5,877억원) 늘렸다.

내년 예산에는 올해 돈을 다 쓰지도 못했는데 증액된 사업만 89개에 달한다. 올해 1,020억원인 농림축산식품부의 폐업지원 예산도 마찬가지다. 예산집행이 50%를 밑도는 사업으로 지적된 데 대해 농림수산식품부는 “올해 폐업지원 요건 충족 품목이 없다”고 했는데도 내년 예산은 1,020억원에서 1,320억원으로 29%나 뛰었다. 국방부가 추진하는 화력장비 사업도 예산이 늘었다. 국방부는 이 사업의 집행률이 떨어지는 데 대해 “집행사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매년 이 사업에 참여하는 업체들이 없거나 계약을 포기하고 사업이 취소됐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집행부진 사업인데 정부는 내년 예산을 425억원으로 약 97%(209억원) 늘렸다.

통일부의 남북경협 관련 예산도 대표적인 집행 부진 사업인데도 예산이 크게 늘어났다. 올해 정부는 남북경협기금 가운데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해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겠다며 예산 815억원을 배정했다. 하지만 북한이 응하지 않으면서 집행이 지연되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년에 예산을 무려 74% 늘린 1,417억원을 배정했다. 또 경협기반 융자 사업의 내년 예산은 올해(1,196억원)보다 111% 늘어난 2,520억원을 반영했다. “남북 관계가 진전되거나 여건이 조성되면 경협 인프라를 추진하겠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유엔 제재 등으로 얽힌데다 남북경협은 최근 북한이 금강산 관광을 독자적으로 하겠다며 우리 시설의 철거를 요청하면서 더 오리무중으로 가고 있다. 2배 늘린 이 예산 역시 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통일부는 매년 남북경협기금 예산을 다 사용하지 못해 다른 용도로 전환해 쓰고 있는데도 또 관련 예산을 늘린 것이다.

정부가 쓰지도 못할 예산을 더 늘려 배정하자 이날 국회에서 열린 ‘예산안 토론회’에서 예정처와 야당이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일권 예정처 예산분석실장은 “2020년 예산안의 집행부진 사업은 5조1,000억원, 264개로 2019년 1조9,000억원 85개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며 “부진한 사업에 대해 (예산을) 엄격하게 심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바른미래당도 “만성적 집행 부진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요구했다. 지상욱 바른미래당 의원은 “(예산이) 이월 또는 불용한 사례가 연례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며 “바른미래당은 결산을 토대로 부진한 사업이 감액 없이 반영될 경우 시정요구를 해 세금 낭비를 막겠다”고 밝혔다. 이종배 자유한국당 의원도 “사상 최대의 내년 예산안은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를 국민 세금으로 무마하는 방만한 재정운용 결과”라며 “내년 예산을 현미경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구경우·방진혁 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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