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년간 유럽연합(EU)의 경제정책을 이끌어온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고별사에서 다시 한번 독일의 재정정책 확대를 촉구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드라기 총재는 28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퇴임식에 참석해 “저금리는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정도의 자극을 주지 않는다”며 “통화정책이 재정정책과 맞물려야 성장목표를 더 빨리 달성하고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미국은 경기조정형 재정정책과 자본시장 연합을 모두 갖고 있었다”면서 “유로 지역은 자본시장 연합과 친순환적 재정정책 모두 없었다”고 지적했다. 두 발언 모두 재정정책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퇴임식에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이 참석했다.
드라기 총재가 특정 국가를 지목한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가 재정정책 확대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힌 점을 고려하면 이날 그의 발언은 재정정책에 보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메르켈 총리를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흔들릴 경우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드라기 총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재정정책 확대를 강조해왔다. 24일 마지막 기자회견에서도 “최근 부진한 경제지표들은 유로존의 경기둔화를 시사한다”며 “역내 재정 여력이 있는 정부들은 적절한 시기에 재정정책을 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드라기 총재의 발언에 대해 메르켈 총리는 “통화정책은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재정정책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독일이 재정확대 정책에 힘을 실을지는 미지수라는 반응이 나온다. 드라기 총재의 후임인 크리스틴 라가르드 차기 총재는 다음달 1일 ECB 총재로 공식 취임한다. 라가르도 신임 총재가 인사청문회에서 “재정 여력이 있는 일부 국가에서 인프라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밝히는 등 드라기 총재와 비슷한 입장을 전한 만큼 새 총재 취임 이후에도 독일에 대한 재정정책 확대 요구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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