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의 부시먼들에게는 두 종류의 굶주린 자가 있대. 리틀 헝거(Little hunger)와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 리틀 헝거는 물질적으로 굶주린 사람이고 그레이트 헝거는 삶의 의미에 굶주린 사람이래.” 이창동 감독의 영화 ‘버닝(Burning)’에 나오는 여주인공의 대사다. 아프리카 남서부에 자리한 칼라하리 사막은 보츠와나와 남아프리카공화국·나미비아·짐바브웨 등에 걸쳐 있다. 면적이 70만㎢가 넘는 사막 밑에는 6,500만년 전 용암이 굳으면서 형성된 기반암이 깔려 있다. 수천만년 동안 바위는 바람과 빗물에 깎이고 해안에서 날아온 모래에 뒤덮였다. 생명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척박한 땅이지만 미어캣·독수리·뱀 등 야생 동물들은 생명을 이어간다. 비결은 칼라하리 사막 밑에 묻혀 있는 소금. 3억년 전 바다였던 땅이 지각변동에 의해 위로 솟아오르며 빅토리아 호수의 두 배나 되는 거대한 호수가 만들어졌는데 바닷물이 마르면서 소금땅이 된 것이다. 칼라하리를 두고 ‘사막과 소금의 땅’이라는 별칭이 따라붙는 이유다.
칼라하리는 1980년대에 개봉된 영화 ‘부시맨’에 등장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족인 산(San)족의 터전이기도 하다. 산족은 대대로 아프리카 남부에 거주해오다 다른 종족에 의해 칼라하리로 쫓겨났다. 하지만 대량의 다이아몬드가 매장된 사실이 알려지며 사막에서조차 삶의 터전을 잃고 멀리 떨어진 정착촌으로 강제이주됐다. 관광객에게 원시적 삶의 모습을 보여주며 대가를 받는 재연 배우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영화 속 대사처럼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가 공존하는 현대 문명의 민낯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국제 연구진이 현생 인류의 발상지를 규명한 결과 인류 최초의 조상은 20만년 전 칼라하리 일대에 살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급격한 기후 변화와 자전축의 이동으로 약 13만년 전에 칼라하리 북동쪽 잠비아와 탄자니아 지역에 녹지가 생겨났고 다시 약 11만년 전에 나미비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남서쪽으로 녹지가 형성되면서 인류의 이주가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이는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출현한 현생 인류가 훗날 대륙 밖으로 이주하는 길을 닦았다는 점에서 인류사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