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양의 동일 재료를 이용하더라도 초기 용매에 따라 판이한 상태의 고분자 나노복합체가 제작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고분자 소재에 나노입자를 더하면 원하는 특성을 갖춘 복합재료를 만들 수 있다. 고분자로 이뤄진 플라스틱은 가볍지만 부서지기 쉬운데, 나노입자를 더해 강도를 높여서 ‘가벼우면서 단단한 플라스틱’을 만드는 식이다. 이런 특성들은 재료에서 비롯된다고 알려졌는데, 재료를 만드는 과정도 한몫한다는 게 이번 연구의 성과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이 대학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김소연 교수팀이 고분자와 나노입자를 혼합하는 ‘용액 혼합 방식’에서 용매가 재료의 최종 구조와 물성에 중요하게 작용한다고 30일 발표했다. 용액 혼합 방식은 고분자와 나노입자를 용매에 녹여 혼합한 뒤 용매를 증발시켜 복합재료를 얻는 기법인데, 어떤 용매를 사용하는지에 따라 최종 물질의 특성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다.
고분자 나노복합체는 최근 주목받는 신소재다. 두 물질이 서로 맞댄 면, 즉 계면 특성에 따라 원하는 성질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에는 혼합하는 물질을 바꾸어가며 계면의 변화를 살펴보는 연구가 많이 진행됐다. 그러나 복합체를 만드는 과정이 계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주목한 연구는 부족했다.
김소연 교수팀은 계면에 영향을 주는 요소로 용매에 주목했다. 용매는 반응 후 제거되므로, 물질계가 반응 전후에 평형을 이루면 어떤 용매를 쓰든 같은 성질의 복합체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복합체를 만드는 복잡한 과정으로 인해 반응 전후에 평형을 이루지 못한다. 용매에 의한 ‘비평형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연구팀은 ‘똑같은 고분자와 나노입자’로 복합체를 만들면서 서로 다른 용매인 물과 에탄올을 이용해, 각 용매가 계면 두께에 미치는 효과를 규명했다. 측정결과 에탄올을 용매로 사용하였을 경우 나노 입자에 흡착돼 계면 층을 이루는 고분자의 비율이 약 2배 더 높게 나타났으며, 계면층의 두께도 1nm 더 두꺼웠다.
1nm에 불과한 계면의 두께 차이는 전체 복합체의 물성에 영향을 주기에 충분했다. 충분한 양의 나노입자와 짧은 사슬 길이를 갖는 고분자를 이용해 에탄올 용매에서 복합체를 만든 경우, 물에서 만든 나노복합체보다 액체에 가까운 성질을 보였다. 계면층에 두껍게 붙은 고분자들의 서로 간 반발력(입체반발력)에 의해서 전체 입자들이 골고루 퍼지는 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물에서 제조된 복합체의 경우 전체 입자들이 퍼짐이 불규칙해 유리처럼 딱딱한 성질이 더 강했다. 하지만 고분자 사슬이 너무 길면 고분자 사슬간 엉킴으로 인한 나노입자의 뭉침이 심해져 오히려 계면층이 두꺼운 나노복합체가 더 단단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김소연 교수는 “이번 발견은 고분자 나노 복합소재를 설계할 때 각 요소의 특성과 더불어 ‘비평형 효과’도 고려해야 함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울산=장지승기자 jj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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