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님 이쪽은 항로라 이동해서 낚시해주세요.”
지난달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항 앞바다. 비 내리는 월요일이었지만 물때가 주꾸미 낚시에 최적인 ‘조금’인 탓에 전국에서 낚시꾼들이 몰려왔다. 이날 보령해양경찰서 오천파출소에 배낚시로 신고한 인원만 2,950명. 오전10시 컴퓨터 화면에 띄운 오천 앞바다 지도에 낚싯배들이 보내오는 어선위치발신기(V-PASS)의 빨간 점들이 가득해지자 해양경찰관들이 서둘러 채비를 마치고 연안구조정에 올라탔다. 출항 전에 승선인원 및 구명조끼 착용 여부 등을 점검하지만 이용객들이 바다에서 구명조끼를 벗거나 선장이 음주 운항을 하는 등 낚시 인원이 늘어날수록 사고발생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배들이 지나가는 항로에서 낚시하는 것도 점검대상이다. 신성룡 경사는 “최근에는 시민들도 안전의식이 많이 높아졌다”면서도 “낚싯배보다 작은 크기의 레저보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며 레저보트 관련 사고가 종종 발생해 단속에 유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400만 낚싯배 이용객에 단속 건수도 껑충=바야흐로 낚싯배 이용객 400만명 시대다. 2016년만 해도 342만명이었던 낚싯배 이용객은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 422만명을 기록했다. 보령 앞바다 역시 주말이면 500여척의 낚싯배로 바다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면서 바다의 안전을 책임지는 해경의 고민도 덩달아 늘고 있다. 한 배에 20여명이 타는 상황에서 한순간의 방심이 사고로 이어져 인명피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출항 전 승객들이 본인과 가족의 연락처를 반드시 기입해야 하고 선장은 인명구조장비 사용법, 비상탈출 방법을 방송으로 안내하도록 의무화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처럼 안전기준은 강화되고 있지만 불법행위는 여전히 발생한다는 게 해경 측 설명이다. 익명을 요청한 한 해경은 “낚싯배들의 불법행위만 보면 손맛을 체험하는 레저 수준을 넘어 물고기를 많이 잡아 돈을 벌려는 경우도 상당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귀띔했다.
대표적인 불법행위로 항로상 낚시를 들 수 있다. 배들이 지나가는 길이라 충돌위험이 커 단속대상이지만 그만큼 경쟁자 없이 물고기를 잡을 수 있어 낚싯배들이 자주 하는 불법행위로 손꼽힌다. 그물코의 규격제한 규정을 위반하고 촘촘하게 그물을 개조해 작은 물고기까지 잡거나 가을 낚시 철에 매일 배를 출항시키려고 당초 지방자치단체에 신고된 선장 외에 다른 사람이 배를 운전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한다’는 전어의 경우 워낙 인기가 높다 보니 낚시 허가를 받지 않은 배가 불법으로 운행하다 걸리는 사례도 있다.
이렇다 보니 올 들어 9월까지 단속된 낚싯배는 454건에 달하며 지난해 같은 기간(216건)에 비해 배 이상 급증했다.
◇사고위험 큰 레저보트에 해경 고민=최근 들어 낚싯배가 아닌 소형 모터보트 등 레저보트로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것도 해경의 또 다른 고민이다. 9톤가량의 낚싯배보다 9분의1가량 작은 레저보트는 사고에 노출되기 쉽고 사고 시 인명피해도 크다.
보령해양경찰서 소속 형사기동정 ‘P-123’의 이수영 정장은 지난 9월에도 레저보트와 낚싯배가 부딪쳐 레저보트에 탔던 사람이 전신 골절되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 정장은 “일요일 항로에서 낚시하는 배 5척을 잡았는데 이 중 하나가 레저보트였다”며 “레저보트가 작아 낚싯배 선장들이 근처에 레저보트가 있는 줄 모르고 지나가다가 충돌하는 일도 왕왕 발생한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레저보트 관련 사고는 늘어나는 추세다. 모터보트·고무보트 등이 충돌, 전복, 기관 손상 등으로 예인된 경우는 2016년 372척에서 지난해 510척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올 들어 9월까지 발생한 레저선박 예인 건수도 총 431척에 달했다. 지난달 9일 인천시 웅진군 영흥도에서는 20톤짜리 배와 0.7톤 레저보트가 충돌해 레저보트에 탔던 사람이 바다에 빠진 사고도 있었다. 다행히 20톤짜리 배에서 바로 구조에 나서 인명피해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강광원 오천파출소장은 “낚싯배의 안전의식은 어느 정도 정착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레저보트 낚시문화는 이제 막 시작 단계”라며 “특히 야간에 레저보트로 낚시하는 경우 사고위험이 매우 크지만 현재로서는 딱히 막을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레저보트 안전책, 선장 적성검사 도입은 과제=오천항에서 만난 해양경찰관들은 안전한 낚시문화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안전기준 강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해경은 올해 낚싯배의 영업구역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비상탈출구, 선박 자동식별장치, 항해용 레이더 등의 구비를 의무화했다. 내년부터는 선박 검사도 2~3년마다 받던 것을 매년 받아야 한다. 선장 자격요건도 소형선박 조종면허만 있으면 됐던 데서 승선경력 2년을 추가했다.
하지만 사고를 완벽하게 예방하기 위해서는 현 기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해경 측 설명이다. 특히 기존 규제들이 낚싯배 위주로 적용돼 레저보트는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다. 신 경사는 “레저보트는 V-PASS 설치 의무화 대상이 아니어서 사고가 날 경우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출항 조건도 낚싯배가 가시거리 1㎞ 이상이어야 하는 데 비해 레저보트는 500m밖에 안 돼 문제”라고 지적했다.
낚싯배에 대해서도 현행 영업신고 방식에서 벗어나 일정 조건에 부합하는 배를 검증해 허가해주는 식으로 바꾸고 선장 적성검사를 시행해 통과한 사람만이 낚시 어선을 신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 오천파출소장은 “지역 선장님들과 해경이 소통하면서 안전 기준, 대책을 계속 공유하고 있다”면서 “승객과 선장의 안전의식이 높아져야 안전한 배낚시도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령=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