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실무협상을 주도해 온 스티븐 비건(56) 미국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가 31일(현지시간)국무부 부장관에 지명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제시한 연말 시한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2일 북미 간의 본격적인 진검 승부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비건 대표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비건 대표의 국무부 부장관 승진과 북한의 도발 시점이 묘하게 겹치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스톡홀름 노딜’ 이후 북한의 초대형 방사포 도발이 역으로 북미 간의 대화 재개가 임박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한다.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 직전에 군사력을 과시해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벼랑 끝 전술’을 수차례 펴왔다. 앞서 북한은 미국과 스톡홀름 실무협상을 진행한다고 발표한 직후 북미관계의 ‘레드라인’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의 경계선에 있는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을 쏘는 초강수를 둔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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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인 빅딜 해법을 원하는 미국과 단계적 비핵화를 원하는 북미 간의 큰 입장 차로 험로가 예상되는 만큼 미측 실무협상 총괄책임자의 위상이 강화된 것은 북미 협상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트럼프 행정부 내 대표적인 대북 대화파로 비건 대표가 북미 비핵화 협상에 의지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비건 대표는 부임 인사를 겸해 방문한 이수혁 신임 주미대사와의 면담에서도 자신의 신분이 어떻게 되든지와 관계없이 북한 핵 문제는 계속 다루고 싶다며 국무부 내 변화와는 무관하게 북미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해나갈 것이라는 강한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건 대표가 부장관에 임명되면 국무부 내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에 대한 비중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 정가를 중심으로 폼페이오 장관의 내년 캔자스 상원의원 출마설이 현실화하면 비건 대표가 사실상 국무부의 수장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미 조야에서는 비건 대표가 부장관이 되도 대북 특별대표직은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비건 대표가 대북 협상을 막후에서 총괄하고 알렉스 웡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가 일상적 관리(day-to-day management)를 맡을 것으로 분석했다. 웡 부차관보는 지난해 6·12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후속 상황을 챙기기 위해 국무부 내에 구성된 ‘포스트 싱가포르’ 워킹 그룹의 실무를 총괄하는 등 대북 특별 부대표를 맡아 비건 대표를 보좌해온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건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며 북미 협상 대표의 위상을 높여준 것은 북미 비핵화 협상을 해결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지위가 상승한 비건 대표의 북측 카운터파트는 대미협상의 핵심 인물인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통’으로 알려진 비건 대표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1기 정부(2001~2005년)에서 당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원하는 국가안보회의(NSC)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은 적이 있다. 그는 또 빌 프리스트 전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국가안보 담당 보좌관을 역임했고, 2008년 대선에서는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의 외교 자문역도 맡았다. 특히 1990년대에는 빌 프리스트 전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역임하면서 북한과의 제네바 합의에 대한 의회 감독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예산 배정에 관여한 이력이 있다. 이후 포드자동차에 입사한 뒤 대북정책 특별대표로 임명돼 북미 비핵화 협상을 전담해 왔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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