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연해주 두만강 인근 핫산지구에 위치한 크라스키노 지역. 러시아에서 크라스키노성이라고 불리는 이 지역에 위치한 발해(698~926년) 염주성(鹽州城)이 불교 사찰을 중심으로 한 ‘성·사찰 복합체’라는 러시아측 연구결과가 나왔다. 염주성 중심부에 자리한 사찰터는 지금까지 발굴된 발해의 불교 사찰 중 가장 큰 규모로 불교가 발해의 국가 통치 기반의 중요한 이념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료적 가치가 크다.
동북아역사재단과 공동발굴 작업을 진행 중인 러시아 극동역사학고고학민족학연구소 블라디슬라프 볼딘 박사는 지난 12년간 발굴 내용을 종합한 결과, 염주성은 성·사찰복합체라는 결론을 내렸다. 러시아식 표현을 번역한 성·사찰복합체란 곡식의 번창을 기원하는 제사장인 사직(社稷)과 유사한 개념으로 성 내부시설이 불교 사찰을 중심으로 설계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러시아 측은 1980년 염주성 북서지역에서 대규모 사찰터를 발견하고 동북아역사재단과 함께 2007년부터 총 5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연해주 지역에서 발굴조사가 이뤄진 발해의 불교 사찰들 중에서 염주성 사찰은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전체 둘레 1.3km에 달하는 사찰터에는 숭배건물인 금당과 전각, 생산 및 경제 건축물들이 집중돼 있다. 사찰이 위치한 염주성 서북쪽은 도로, 온돌, 수로 등 생활시설 집중된 지역으로 그 중심에 위치한 건축물이 바로 사찰이다. 그동안 발굴 조사를 통해 사찰터에서 금당지, 전각지, 우물, 기와 생산 가마터, 마당을 발견됐고, 금동 불상과 장식물, 기와, 용기 등의 유물도 발굴됐다.
특히, 성 내에서 가장 높은 부분에 위치한 사찰터는 성 내부가 잘 조망될 뿐만 아니라 성 밖도 관찰할 수 있도록 조성됐다. 또 사찰 내 중심 건물인 금당은 주변 지역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장방형의 토축기단 위에 세워져 당시 사찰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발굴작업에 참여한 정석배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교수는 “사찰터가 발견된 서북지역은 석축담장에 의해 사찰구역과 주거구역이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다”며 “이러한 사실은 사찰이 처음부터 염주성의 전체 구획에 맞춰 조성됐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볼딘 박사는 사찰의 존속시기를 10세기 전반이나 그보다 더 이른 시기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발해가 멸망한 이후에도 염주성은 여전히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란국은 926년 발해를 정복한 이후에 속국인 동단국(東丹國)을 세워 발해인들을 통치해왔다. 발해가 멸망한 이후에도 거란은 염주성을 일본, 신라와의 교역을 위한 거점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볼딘 박사는 “염주성의 마지막 단계는 거란이 동단국을 멸망시킨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파괴된 사찰 건축물과 생산시설 등 사찰터에서 발굴된 학살과 화재의 흔적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염주성은 토층 연구를 통해 발해 건국 이전인 고구려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고고학 자료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김은국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발해 62개 주 중 하나인 염주성에서 이 정도 규모의 사찰터가 발굴됐다는 점을 통해 발해가 불교를 국가의 핵심적인 통치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염주성의 사찰터, 금당지, 전각지, 우물 등의 건축양식과 축조방법을 보면 고구려의 계승성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며 고 말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오는 8일 서울 서대문구 재단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한-러 크라스키노성 국제학술회의’를 진행한다. 이 자리에서 볼딘 박사가 발표하는 성·사찰 복합체의 의미와 해석, 보존방법에 대한 토론도 함께 진행된다.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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