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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질 개선보다 동반 '하향 평준화' 우려...과고·영재학교 쏠림도 심화할듯

[정부, 고교서열화 해소 방안]

조국사태로 졸속 진행...강남 등 명문학군 학생 더 몰릴수도

'교과특성화 학교' 자율 선택·공동교육 클러스터 도입 불구

재정 한정적인 일반고서 특목고 수준 학습 가능할지 미지수

자사고·외고 등 거센 반발...다음 정권서 또 뒤집힐 가능성도









정부가 7일 외국어고·자율형사립고·국제고교 일괄 폐지의 후속 대책으로 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 문제로 인해 입시 불공정 문제가 불거지자 특목고를 희생양으로 삼은 탓에 곳곳에서 졸속이라는 비판이 터져 나온다.

일단 외고 등 입시 명문고 폐지로 일반고 교육의 질이 개선되기보다는 동반 ‘하향 평준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또 특목고 폐지로 학생들이 강남 등 명문 학군으로 몰리면서 지역 간 불균형이 더 심화하고 이번에 폐지 대상에서 빠진 과학고·영재학교로의 쏠림 현상이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나름대로 전통을 가진 학교들을 일방적으로 폐지하는데 따른 반발이 거세질 경우 차기 정권이 이번 정부의 교육개혁안을 그대로 실행할 지도 미지수다.

◇일반고 정상화 가능할까=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일반고 역량 강화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영어·수학 등 특정 교과에서 기존 일반고에서 배울 수 없었던 특목고용 전문교과(심화학습)까지 배울 수 있는 ‘교과특성화 학교’를 고교들이 자율 선택하도록 했다. 또 기존 특목고·자사고 등과 일반고 등을 하나로 묶어 교육 인프라를 상호 교류하도록 하는 ‘공동교육 클러스터’를 도입하도록 했다.

하지만 특목고들이 일반고 대비 최대 3배 이상의 교육비를 투입해 심화교육을 실시해온 점을 감안하면 교과특성화 학교 지정만으로 기존 특목고 수준의 교육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정부 예산은 5년간 교과특성화학교 운영에 372억원, 온라인과정을 포함하는 공동 클러스터 운영에 1,300억원 등에 불과해 교육역량 강화 예산이 큰 폭의 확대를 이뤘다고 보기는 어렵다.

일반고로 전환된 기존 특목고도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게 뻔하다. 이들 특목고들은 일반고 전환 시 정부의 재정지원금만으로 운영해야 한다. 한 특목고 관계자는 “학부모들이 비싼 등록금을 감수하면서 특목고를 택한 것은 일반고의 교육 여건이 그만큼 열악하기 때문”이라며 “부실한 공교육을 끌어올리는 것이 정부 역할이지 우수하다는 이유로 기능을 멈추게 하는 것을 납득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자사고학부모연합회 학부모들과 자사고 학생들이 지난 7월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청소년 가족 문화 축제 한마당’에 참석해 자사고 폐지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서울경제DB


◇강남·목동 등 ‘교육 특구’로 더 몰리나= 특목·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거주 지역별 불균형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서울의 일반고는 학생의 1~3지망을 받아 서울 전 지역을 대상으로 1단계 20%를 선발한 뒤 거주지역 구 등을 기반으로 2단계 40%를 뽑고 1·2 단계 지원학교와 통학 거리 등을 고려해 나머지 3단계 40%를 배정한다. 그나마 여건이 나은 특목·자사고에서 전환한 일반고로 학생이 몰릴 수 있어 강남 3구 등 이들 학교가 다수 위치한 지역으로의 학생 쏠림 현상이 더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과학고와 영재학교 입학 경쟁은 천정부지로 치솟을 게 확실시된다. 과고·영재학교는 최근 정부의 13개 대학 학생부종합전형 실태조사에서 고교 서열화의 최정점에 있다. 임성호 하늘교육종로학원 대표는 “과고·영재학교 입학 여부가 일류대 합격을 보장하는 보증수표가 될 것”이라며 “정부가 일종의 ‘면죄부’에 희귀성까지 얹어준 셈이어서 과고 사교육은 늘어나고 입시가 대입 단계가 아닌 고입 단계에서 끝나는 현상도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여기에 기업 설립 학교의 임직원 자녀우대 등 선발 방식은 변화 없이 유지될 것으로 전망돼 또 다른 특권논란으로 번질 가능성도 예고된다.

현재 대다수 일반고의 경우 학업 성적이 천차만별인 학생들이 함께 배우는 체제여서 면학 분위기 조성에 한계가 많은 상황이다. 정부 입장처럼 공교육 붕괴의 원인이 전체 학생의 4%에 불과한 특목·자사고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후기고’인 일반고의 환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입시 전문가들도 현재 국내 일반고의 30~40%가량은 상당 과목이 자격고사화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대비 교육마저 불가능한 상태라고 지적한다.

과목 내신 평균과 수능 평균이 20~30점 이상 차이 나는 등 학교 시험이 지나치게 쉬운 학교들의 비율로, 무시험 전형이 자리매김하면서 면학 분위기가 크게 악화됐고 ‘실질적 평등’을 외면하는 정책 기조가 이를 키우고 있다는 뜻이다. 한 학부모는 “학력고사 시대 인문계 고교는 연합고사 등 일종의 자격고사를 통과한 학생만을 근거리 배정했다”며 “불공정한 교육기회를 바로잡겠다며 일반고에 학생들을 몰아넣으려면 적어도 경쟁 가능한 학생들을 가늠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정부에서 뒤집힐 가능성도= 결국 진보 진영의 ‘보편적 평등’ 논리가 이번 발표를 이끌었다는 게 교육계의 분석이다. 고교 서열화는 제대로 된 수월성 교육을 원하는 대학과 학부모·학생들의 열망을 반영한 결과인데도 정부가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일괄 폐지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2025년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고교 환경 자체가 바뀔 수 있다며 특목고 일괄 전환 시점으로 설정했으나 고교학점제 역시 ‘기계적 평등’의 진영 논리에 갇혀 근간인 성취평가제(절대평가)의 낙제·유급·월반 등의 문제에 손도 대지 못한 채 백지 상태로 머물러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발표 실행이 차기 정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당장 자사고·외고 등 당사자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또 엘리트 교육에 대한 일부 학생이나 학부모들의 욕구가 큰 상황이다. 이 때문에 한동안 교육계의 혼란을 초래하다 차기 정부에서 재검토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희원기자 heew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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