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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브란덴부르크문





중세 이후 독일은 1,0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신성로마제국 아래 수백 개의 나라로 갈라져 있었다. 프로이센도 독일 통일을 꿈꾸는 연방국가 중 하나였다. 1734년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브란덴부르크 일대를 프로이센 왕국으로 승격시킨 후 수도 베를린을 둘러싼 새로운 성벽 건설을 지시했다. 시가지와 외곽을 연결하는 18개의 문이 만들어졌는데 브란덴부르크문이 그중 하나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북유럽의 강국으로 성장한 프로이센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해 랜드마크를 건설할 계획을 세운다. 건축가 카를 고트하르트 랑한스는 기존 브란덴부르크문을 허물고 높이 26m, 가로 65.5m의 새로운 건축물을 건립했다. 1791년 완공된 이 건축물은 ‘평화의 문’이라 명명됐으며 1793년 요한 고트프리트 샤도가 평화를 상징하는 그리스 여신 에이레네와 그녀를 끄는 4두 마차상 ‘쿼드리가’를 조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문을 처음 통과한 인물은 나폴레옹이었다. 1806년 10월14일 나폴레옹 1세가 이끄는 프랑스군과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이끄는 프로이센군이 맞붙은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승리한 것. 10월27일 나폴레옹은 브란덴부르크문을 지나 베를린궁까지 행군했고 ‘쿼드리가’를 전리품으로 가져갔다. 이 조각상은 프로이센군이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나폴레옹 군대를 격파한 1814년에야 찾아올 수 있었다.



베를린이 동서로 분단되면서 브란덴부르크문은 냉전을 상징하게 됐다. 분단 직후에는 일반인이 왕래할 수 있었지만 1961년 베를린장벽이 세워지면서 허가를 받아야 했다.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향해 “이 문을 열라! 이 장벽을 무너뜨리자”고 연설했고 2년 후인 1989년 11월9일 마침내 베를린장벽이 허물어졌다. 12월22일에는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가 브란덴부르크문을 지나 동독의 한스 모드로 총리와 역사적인 악수를 나눴다.

베를린장벽 붕괴 30주년을 앞두고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는 통일 독일을 자축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장벽 붕괴 30년이 지난 지금 독일에는 평화가 일상화됐는데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냉전 지역인 한반도에서는 언제쯤 철의 장막이 걷힐까.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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