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날 떠들어도 공염불이다. 금융권 최고경영자(CEO)의 짧은 임기 문제다. 정치권이나 학계·언론 등에서 꾸준히 지적하고 있지만 바뀌는 것이 없다. 연말부터 내년 초까지 금융권 CEO 교체 물결이 일렁이기 시작하자 이미 ‘낙하산’ ‘라인’ 이야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의 대규모 손실문제도 따지고 보면 은행 CEO의 짧은 임기가 핵심문제인데도 ‘임기’ 문제보다 ‘누가 되느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도진 IBK기업은행장과 이대훈 농협은행장이 12월 임기가 끝난다. 은행장뿐 아니라 금융지주사 회장 임기도 임박해 있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임기가 내년 3월이고, 김광수 NH농협금융그룹 회장 임기도 4월이다. 통상 2년이던 은행 CEO들의 임기는 더 짧아지고 있다. 이대훈 행장은 취임 당시 임기가 1년이었다. 농협금융 전임 회장이 수익 극대화 차원에서 대놓고 은행장 임기를 1년으로 조정했다. 손태승 회장의 지주회장 임기도 1년에 불과하다. 국내 16개 시중은행 은행장의 최근 8년간 평균 재임 기간은 22개월(1.8년). 반면 같은 기간 미국 5대 투자은행(IB) CEO의 평균 재임 기간은 5.8년이다.
최근 DLF 사태도 ‘내 임기 동안’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해 결국 과당경쟁을 불러일으켰고 소비자 피해로 연결됐다. 짧은 임기 내에 성과를 올리려다 보니 따른 무리수였다. 전임자의 무리수로 후임자는 고스란히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임자와 후임자의 잘잘못을 쫓아 은행 내부에 ‘라인’이 형성돼 경쟁력을 잃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낙하산’ CEO는 더 골치 아픈 존재다. 임기를 늘려 줄 수도 없고 임기가 남아 있어도 정권이 바뀌면 물러나라는 압력이 발생했다. 최근 은행 CEO를 정권 공치사의 ‘막차’로 여긴다는 말이 난무하고 있다. CEO를 사유화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말이다. 때마침 올해 국정감사에서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단기성과 위주의 영업개선 방안으로 “금융사 경영자의 임기를 연장하는 것이 좋은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DLF 재발 방지책으로 고난도상품의 은행 판매 금지라는 초강수 규제를 내놓은 금융당국이 최종 조율 안에는 ‘진짜 핵심’을 놓치지 않기 바란다.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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