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8시께 서울 구로구 A초등학교 앞 도로에서 한 남자 어린이가 맞은 편에서 오던 택시의 경적 소리에 놀라 후다닥 뛰어 학교 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경적을 울렸던 택시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달렸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으로 시속 30㎞ 속도 제한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었지만 택시는 족히 시속 50㎞ 정도는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스쿨존 내 교통 사망사고 시 가중처벌하고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민식이법’을 두고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일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안전해야 할 학교 앞 등하굣길은 여전히 어린이에게 위험지대인 것으로 드러났다.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안전시설 구비뿐만 아니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도로교통공단 등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까지 서울에서 발생한 스쿨존 어린이 교통사고는 89건이다. 이 사고로 사망한 어린이는 2명, 부상당한 어린이는 90명에 이른다. 지난해 발생한 교통사고보다 18건 늘어난 수준이다. 지난 2016년 서울 지역 스쿨존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고는 96건으로 최근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올해 다시 증가세로 전환됐다. 지역별로는 강서구(12건), 구로구(11건), 도봉구(7건), 양천구(6건) 등에서 사고가 자주 발생했다.
이날 서울 구로구 일대 초등학교 인근에서도 표지판이 앞에 있는데도 제한속도를 넘어 빠르게 달리는 차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서울 양천구의 B초등학교의 스쿨존 인근에는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 사이로 어린이들이 지나가기도 했다. 경찰은 “서울 지역 스쿨존 1,720여개 중 과속 단속 카메라가 설치된 곳은 5%에 그친다”며 “정부가 당정협의를 거쳐 1,000억원가량 예산을 증액해주기로 한 만큼 앞으로 설치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스쿨존 내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 의무화, 신호등과 과속방지턱 설치 등 도로안전 시설 확충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당장 운전자가 스쿨존에서 속도를 줄이고 시야에 잘 띄지 않는 어린이 보행자에 주의해서 운전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지 않는 한 어린이 교통사고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조윤영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장은 “옐로카펫(어린이 횡단보도 대기소)을 조성하는 데도 학부모, 어린이, 경찰, 지자체 공무원 등이 모두 참여해 의견이 반영돼야 사고 예방 효과를 높일 수 있다”며 “스쿨존과 관련한 관계자들의 인식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한 카메라 설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지영·한동훈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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