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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정어리 떼





인구통계학자 미셸 플랑은 ‘최대장수지수’를 개발하기 위해 100세 이상 노인이 많이 사는 지역을 지도에 표시했다. 그가 파란색 동그라미를 친 지역은 ‘블루존’이라 불렸는데 이후 ‘장수마을’을 지칭하는 대명사가 됐다. 블루존 중 한 곳인 이탈리아 사르데냐는 언덕이 많고 가팔라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지 않다. 척박한 땅인 샤르데냐가 장수마을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염소 젖과 포도주, 그리고 불포화지방산을 다량 함유한 정어리가 큰 역할을 했다. 실제로 사르데냐(Sardegna)의 어원이 ‘정어리(sardine)’에서 왔을 정도로 사르데냐 앞바다에서는 정어리가 많이 잡힌다.

청어과의 물고기인 정어리는 지중해 연안과 북유럽 해역에서 많이 잡히는데 10㎝ 내외의 작은 몸통에 비해 알차게 들어간 단백질과 지방질 덕분에 ‘바다의 쌀’이라는 별칭이 따라붙는다. 1803년 김려가 지은 국내 최초 어류학서 ‘우해이어보’에는 정어리를 ‘증울’ 혹은 ‘대추’라고 적었는데 당시에도 민초들의 주린 배를 채우는 귀한 양식으로 활용됐음을 알 수 있다.



정어리의 가장 큰 특징은 거대한 무리를 형성하면서 대규모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특히 산란을 위해 해류를 따라 이동하면서 형성하는 정어리 떼는 수 ㎞에 이를 정도로 장관을 이룬다. 갑작스러운 포식자의 출현에 수백만마리가 한순간 흩어졌다가도 다시 모여드는 장면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1920년대에는 함경도 연안에 정어리 떼가 나타나 섬으로 오인할 정도였고 300톤급 대형기선이 정어리 떼에 갇혀 항구를 빠져나가지 못하기도 했다.

최근 이탈리아 곳곳에 ‘정어리 떼’ 시위가 빈발해 화제다. 스스로를 ‘정어리’라고 칭하는 시민들이 극우주의와 혐오정치에 반대한다며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운동이다. 14일 볼로냐에 사는 시민 4명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반극우 시민운동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는데 수백만마리가 한꺼번에 몰려다니며 덩치 큰 물고기와 맞서는 정어리 떼처럼 시민의 힘을 보여주자는 취지에서 이런 호칭을 만들었다고 한다. 첫 집회에만 1만2,000여명이 참여했고 모데나·팔레르모 등 지방도시로 확산하더니 급기야 12월14일에는 수도 로마에서 대규모 시위가 예정돼 있다. ‘혐오의 정치를 끝내자’는 정어리 떼의 메시지는 비단 이탈리아뿐 아니라 갈등과 분열로 점철된 한국 사회에도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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