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여사의 무개념 주차를 고발합니다.” “김 여사님 큰일 나요, 그러지 마세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김 여사’ 시리즈는 예나 지금이나 인기다. 일부 여성 운전자의 상식 파괴 주차 행태나 교통법규를 무시한 주행 사례 등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올린 뒤 ‘김 여사’로 통칭해 낄낄대며 비난하는 식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운전에 능숙하고 자동차와 관련된 지식도 전문가에 버금가는 여성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남성이 주도해온 자동차경주 업계에서도 ‘차 좀 아는 그녀들’이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
28일 대한자동차경주협회(KARA)에 따르면 KARA 공인 라이선스 소지자 중 여성은 드라이버 37명, 오피셜(심판원) 180명으로 총 217명에 이른다. 드라이버는 전체 877명 가운데 4.2%, 오피셜은 총 2,898명에서 6.2%를 차지한다. KARA 관계자는 “국내에 10명이 채 안 되던 여성 공인 드라이버가 4년 새 네 배나 늘었다. 물론 37명 가운데 99%가 입문 경주용 C 라이선스(레이싱스쿨 이론·실기 과정 수료) 소지자지만 “의미 있는 숫자”라고 KARA 관계자는 설명했다. 2016년 119명이던 여성 오피셜도 매년 뚜렷한 증가세를 보인다. 오피셜은 각종 자동차경주 대회에 참여해 심사위원의 판정을 돕거나 출입을 통제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기본적으로 자동차와 자동차경주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지원한다. 특히 올해는 여성 오피셜이 지난해 142명에서 38명이나 늘었다.
KARA는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최근 이화여대에서 재학생을 대상으로 ‘모터스포츠 전문인력 양성 특강’을 진행했다. 국내에서 모터스포츠를 주제로 여성 대상 특강이 개설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로 드라이버 서주원씨가 강연자로 나섰는데 공간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100명 가까운 학생들이 몰려 다양한 질문과 의견을 쏟아냈다. KARA는 올해부터 연말 시상식에 여성 드라이버 상을 부활시킨다.
국내 간판 자동차경주인 CJ대한통운 슈퍼레이스 챔피언십은 BMW 미니 차량으로 겨루는 미니 챌린지 코리아를 2019시즌 처음 개최하면서 여성 드라이버끼리의 경주인 레이디 클래스를 운영해 호응을 얻었다. 슈퍼레이스 관계자는 “다양한 계층의 더 많은 사람이 레이스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미니 차종과 공인 라이선스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경주를 신설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여성 운전자 중 미니 오너가 많다는 점을 떠올려 여성 전용 경주를 개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평일에 일반 도로에서 타던 차량으로 주말에 서킷을 달렸다.
레이디 클래스 시즌 챔피언인 이하윤씨는 “자동차 수리가 취미라 관련 모임에서 활동하다가 아마추어 경주가 생겼다고 해 바로 중고 차량을 구입한 뒤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시즌 2위 이지영씨는 “공통 관심사인 자동차경주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미용실 원장님한테 ‘이런 경주가 생겼다는데 참가해볼 생각 없느냐’는 말을 들은 것이 시작이었다. 타던 차를 미니로 바꾸고 뛰어들었는데 코너를 돌 때 경험하는 무서우면서도 짜릿한 기분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밝혔다.
경주장을 찾는 여성 관람객도 크게 늘었다. 슈퍼레이스는 2019시즌 18만2,000여명의 ‘역대급’ 관중을 모았는데 이 중 39%인 7만1,000여명이 여성 관중이었다. 2년 전만 해도 1만9,000여명에 불과하던 여성 관중은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난해와 비교한 증가율은 무려 124%다. 모터스포츠 주요 소비층을 30대 남성에서 가족 단위로 확대하려는 노력에 특히 ‘엄마’ 관람객이 크게 늘었고, 레이스를 전혀 모르는 여성의 시점에서 레이스 상식과 경주장 안팎 소식을 전하는 유튜브 콘텐츠 등 온라인플랫폼 활용도 효과를 봤다.
모터스포츠에 불어닥친 여풍(女風)은 세계적인 흐름이기도 하다. 국제자동차연맹(FIA)은 ‘우먼 인 모터스포츠’ 캠페인을 벌여 여성 인구 확대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선수·오피셜·레이싱팀 등 각 분야 여성 30여명을 연맹 위원으로 선임하기도 했다. 내년부터는 주요 챔피언십인 F2·3의 레이스 디렉터도 여성이 맡는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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