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우리 다 죽어!”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시즌1에서 노인 오일남이 외치던 대사는 시즌2에도 나온다. 다만 화자가 바뀌었고 대사는 좀 더 늘었다. “난 이 게임을 해봤어요, 이러다 정말 다 죽어요!” 주인공 성기훈의 처절한 외침이었다. 그렇게 얘기했건만 시즌1도, 그리고 시즌2도 게임 참가자들은 결국 거의 다 죽는다.
지금 세계 주요 프로골프 투어의 외침은 성기훈을 닮았다. “이렇게 놔두다간 정말 다 죽는다니까!”
투어를 병들게 하는 ‘죽음의 게임’은 슬로 플레이다. 늑장 플레이, 지연 플레이로도 불리는 바로 그것. 플레이가 굼뜬 골퍼를 우리는 흔히 느림보 골퍼라고 불러왔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너무 귀여운 표현이다. 이대로 놔두다간 투어가 망하고 말 거라는 요즘의 엄혹한 분위기는 느림보들을 암적인 존재 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슬로 플레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이며 과연 어디로 가게 될까?
1분 5초의 기다림, 그러고는 OB
지난달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AT&T 페블비치 프로암 최종 라운드 6번 홀(파5). 핀까지 210야드를 남긴 두 번째 샷을 앞두고 김주형은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그린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있었지만 그의 샷 기량이라면 핀 가까이 붙일 수 있는 찬스인 건 확실해 보였다.
페어웨이의 볼 뒤에서 한 번 연습 스윙을 한 김주형은 그 자리에서 아주 신중하게 한 번 더 연습 스윙을 했다. 그러고는 두 발짝쯤 뒤로 물러나더니 또 한 번의 연습 스윙. 그 자리에서 작은 스윙을 한 번 더 한 뒤에야 타깃 방향으로 똑바로 서서 아이언을 들고 에이밍을 했다.
들었던 아이언을 내리면서 한두 발짝쯤 또 뒤로 물러난 김주형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그렇게 거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있는 시간만 10초가 훌쩍 넘어갔다.
이제는 결심이 선 걸까. 드디어 어드레스에 들어갔지만 김주형의 준비 동작은 끝나지 않았다. 어드레스 자세를 유지한 채 고개만 까딱 돌려 핀을 확인하기를 여섯 번. 마침내 회심의 샷이 날아갔지만 생각보다 크게 오른쪽으로 휜 타구에 김주형은 오른팔을 들어 잘못된 방향을 가리켰다.
중계진은 “우리의 기다림도, 김주형의 기다림도 소용없는 일이었다”고 오랜 준비 동작을 지적했고 이 영상을 담은 트윗은 수백 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트윗에 적힌 글은 ‘어드레스까지 42초, 어드레스 자세에서 23초. OB를 내는 데 걸린 시간 1분 5초. 골프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였다.
페덱스 포인트도 뺏겠다…PGA 투어의 으름장
김주형만의 문제는 아니다. PGA 투어 파머스 인슈어런스 오픈 최종 라운드에 마지막 조의 9홀 플레이는 3시간 가까이 걸렸다. 앞에서부터 밀리고 밀린 탓이다. 이러자 CBS의 코스 내 해설자 도티 페퍼가 한마디 했다. “이거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겠는데.”
페퍼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17승의 여자골프 전설. 마스터스 최초의 온 코스 해설 등 은퇴 후 중계 쪽에서도 여러 기록을 남긴 그는 골프계 이슈들에 대해 직설로 일관해온 인물이다.
페퍼의 말이다. “플레이 속도 문제는 다른 접근으로 보는 게 맞다. 이건 존중의 문제다. 존중의 대상은 동료 선수는 물론이고 팬, 중계방송 관계자 등 모두다.” 그러면서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남녀노소 골프로 몰려드는 큰 기회를 맞았는데 이걸 망쳐선 안 된다.”
파머스 인슈어런스 대회에 어떤 조는 18홀 경기에 5시간 29분, 그 전 주인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선 5시간 39분이 찍히는 등 이대론 심각하다는 분위기가 투어 안팎에서 대두하고 있던 참이었다.
PGA 투어는 작년부터 이미 전쟁을 준비 중이다. 5만 명 팬 대상 설문을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한층 더 재미있는 투어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투어 측은 팬들의 흥미를 뺏는 주범으로 다름 아닌 슬로 플레이를 지목했다.
PGA 투어는 그래서 선수별 평균 스트로크 시간을 공개할 참이다. 정해진 시간을 넘기는 상습 위반자에 대해선 벌금 외에 시즌 점수인 페덱스 포인트 삭감까지도 검토하겠다는 자세다.
“올해 축소된 필드(풀시드 125명→100명)로 티타임 간 간격이 더 벌어졌고 그래서 슬로 플레이는 더 도드라져 보이게 돼있다. 슬로 플레이어들이 더는 숨을 곳이 없도록 조치할 것이다.” PGA 투어의 룰 부문 수석 부회장 게리 영의 말이다.
PGA 투어는 ‘비디오 리뷰 센터’도 운영할 계획이다. 경기 중 상황별 룰 적용에 있어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없애기 위함이다. 이와 함께 남은 거리를 계산해 클럽을 선택하는 데 있어 시간을 줄이려고 거리측정기 전면 허용도 검토한다.
올해 출범한 스크린골프리그 TGL의 ‘40초 샷 클록’을 도입하는 방법도 있다. 농구처럼 제한시간이 카운트다운되는 걸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경기하면 아무리 둔감한 선수라도 변화할 수 있으리란 기대에서다.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다들 잘 알겠지만 투어에서 슬로 플레이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플레이 속도를 두고 선수끼리 언쟁을 벌이는 일은 비일비재했고 한바탕 뭔가 뒤집어질 것 같던 일도 이미 있었다. 5~6년 전 PGA 투어 플레이오프 중 한 대회에선 브라이슨 디섐보가 집중 타깃이 됐다. 70야드 남긴 샷을 하는 데 3분을 쓰고 2m 조금 넘는 퍼트를 하는 데 2분 넘게 썼던 그다. 골프 팬과 관계자들의 비난으로 소셜미디어가 들끓었고 디섐보는 결국 사과 아닌 사과를 해야 했다.
하지만 슬로 플레이 퇴치 정책은 세상을 뒤집을 만한 뭔가가 나올 것 같다가도 얼마 지나면 또 수면 아래로 가라앉곤 했다. 마치 미국의 의료서비스 시스템이나 우리나라의 연금개혁처럼.
올해는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인식이 어느 때보다 강해 보인다. ‘빠르면서 굵고 짧은’ 포맷을 앞세운 LIV가 4년 차를 맞아 자리 잡아가는 상황도 한몫 했을 것이다. 골프에 놀이와 파티를 더한 LIV가 ‘젊은이들의 경기’라는 별명을 얻고 PGA 투어는 ‘노인들의 경기’로 규정된다면 PGA 투어에는 이보다 최악인 상황도 없을 것이다.
물론 ‘골프광’ 도널드 트럼프의 재집권에 PGA 투어와 LIV는 곧 합병될 거란 전망도 있다. 하지만 얼마나 걸릴지 여전히 알 수 없고 합쳐지더라도 더 많은 파이와 목소리를 갖기 위한 길은 매력적인 정체성을 어필하는 방법밖에 없다. 60초 안팎의 숏폼 콘텐츠가 익숙한 현 세대와 미래 세대는 샷 하나에 몇 분을 쓰는 스포츠엔 1도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오랫동안 굳어진 걸 깨려면 그만큼 극단에 가까운 대책이 있어야 하는 법. 선수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중 매버릭 맥닐리는 이렇게 말했다. “투섬으로 플레이하는 건 어떨까. 한 조에 3명이 아니라 2명일 땐 누가 느린지 확 드러난다. 항상 ‘쟤가 샷을 끝내면 바로 나’이기 때문에 3명일 때보다 자기도 모르게 속도를 내게 된다.” 스탠퍼드대 출신의 맥닐리는 아버지가 선마이크로시스템즈 창업주인 금수저다. 그는 컷 통과하는 선수의 숫자를 줄여 주말 라운드를 컴팩트하게 운영하는 게 팬을 잃지 않는 길이라고도 주장했다.
LPGA 투어는 ‘6초·16초 룰’을 새로 만들었다. 주어진 샷 시간을 5초 초과하면 벌금이고 6~15초 초과면 1벌타, 16초를 넘기면 2벌타다! 현행 규정은 31초 초과 때 2벌타이고 30초 초과까진 벌금만 물리는 정도니 급진적인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벌금 내고 말지’ 식의 생각을 손 보겠다는 것이다. 새 룰은 3월 27일 시작될 포드 챔피언십부터 적용된다.
LPGA에 따르면 지난해 슬로 플레이로 31명이 벌금을 내거나 벌타를 받았다. 벌금 22명, 2벌타 9명이었다. 바뀌는 규정을 적용해보면 1벌타 23명, 2벌타 8명이 된다는 설명이다. LPGA의 새 룰은 골프의 구원이 될 수 있을까.
TGL이 농구의 샷 클록을 배워온 것처럼 다른 종목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겠다. 보통 경고-1벌타-2벌타-실격으로 이뤄지는 슬로 플레이 제재 때 축구처럼 옐로 카드를 사용하는 거다. 구두 경고보다 갤러리들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카드를 들면 ‘재범’ 확률이 좀 떨어지지 않을까.
내가 느리다고요? 발뺌하는 선수와 증거 내미는 경기위원
관련기사
참고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플레이 속도 관련 규칙은 이렇다. 아웃 오브 포지션(홀을 마치는 데 부여된 시간 초과)이 확인되면 계시를 통보한다. 시간을 재겠다고 알려주는 것이다. 샷 하나에 부여된 시간은 보통 최대 40초. 이를 어기면(배드 타임) 1차로 경기위원 구두 경고이고 2차 위반 땐 1벌타와 벌금 400만 원, 3차 땐 추가 2벌타와 다음 1개 대회 출전 금지, 그리고 벌금 600만 원이다. 4차 땐 실격에다 다음 3개 대회 출전 정지와 벌금 800만 원이다. 아웃 오브 포지션이 아닌 경우에도 개별 플레이어나 조 전체에 대해 임의 계시(Random Timing)를 할 수 있게 돼있다.
어떤 대회의 1라운드에 1차 배드 타임으로 구두 경고를 받았는데 2~4라운드 사이 한 번 더 배드 타임이 적발되면 1벌타와 벌금 400만 원인 식이다. 시즌 누적 횟수에 따른 벌금은 또 별도로 있다.
LPGA 투어처럼 부여된 시간을 넘겼을 때 초과한 시간에 따라 제재를 세분화하진 않았다. 지난 시즌 벌타까지 간 사례는 두 차례가 전부다. KLPGA 투어 룰 관계자는 “지금의 룰 체계를 당장 바꾸지는 않을 거지만 새 시즌 들면 좀 더 타이트하게 적용할 계획이다. 이는 선수들도 원하는 바”라고 했다.
선수들도 같은 조 동반 선수나 앞 조가 느리면 경기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직접 경기위원에게 시간 좀 재달라며 계시를 요청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룰 관계자는 “앞 조와 간격이 벌어져서 선수들이 뛰어가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을 텐데 중요한 건 플레이 속도를 높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먼저 치는 선수가 샷을 마친 다음에야 장갑을 끼고 물을 마시고 맵을 확인하는 선수도 가끔 있다. 그러면 늦다. 준비 과정을 조금씩만 빨리 해주면 시간을 줄일 수 있는데 말이다. 드롭 위치 판정 등 룰 적용 때문에 경기위원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동반 선수가 먼저 자기 볼을 치거나 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결국 ‘협동’해서 경기 시간을 줄여나간다는 분위기가 중요한 것이다.”
선수 입장에선 나는 분명 빨리 쳤다고 생각했는데 경고를 주고 벌타를 주겠다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논쟁도 자주 일어날까. 논쟁이 잦으면 경기위원 입장에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가 부담스럽진 않을까.
실제로는 이렇다 할 논쟁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계시와 함께 영상을 찍어 남기기 때문이다. 이의를 제기한 선수에게 영상을 보여주면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샷 소요 시간을 측정할 때 과거엔 초시계를 이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경기위원 전원이 태블릿PC를 들고 다닌다. 홀별로 주어진 시간이 태블릿에 표시되고 초과하면 빨간불이 뜬다.
권청원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 경기위원장도 “촬영한 영상을 본인한테 보여주면 시인할 수밖에 없다. 영상에선 샷 소요 시간이 바로 확인되지 않나. 특정 선수에게 불이익을 주려는 게 아니라 다른 선수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는 걸 이해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권 위원장은 “작년 우리 투어의 평균 18홀 소요 시간은 4시간 35분으로 나타났다. 올해는 4시간 25분 안으로 끊는 게 목표”라고 했다. 평지가 주를 이루는 미국은 보통 4시간 20분을 지향한다. 우리나라는 산악 코스가 많지만 그래도 미국에 가깝게 가고자 한다. “우리 선수들이 미국에 진출했을 때 플레이 속도 때문에 애를 먹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KPGA 투어는 새 시즌 EST(Excessive Shot Time) 제도도 새로 적용할 계획이다. 습관적으로 느린 선수들을 재촉하기 위한 것으로 위반 횟수가 쌓일수록 벌금이 복리처럼 불어나는 방식이다.(KPGA는 11일 이 제도 도입을 발표했다.)
슬로 플레이의 심리학…우리 안의 불안을 들여다보자
슬로 플레이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늑장 골퍼의 심리 또는 ‘심보’는 과연 어떤 걸까.
리디아 고, 고진영, 박인비 등의 멘탈 코치를 맡은 정그린 그린코칭솔루션 대표(광운대 코칭심리학 박사)의 얘기를 들어봤다.
“자신감이 없어서 스윙이나 플레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혼란스러운 시간을 갖기 때문에 느린 경우가 있는가 하면, 준비하는 시간에 여유를 갖고 확신이 들 때에 플레이를 해야만 하는 슬로 플레이어도 있다. 전자는 불안하고 혼란스럽기 때문에 지연되는 경우이고 후자는 자신만의 안정감을 찾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케이스다.” 아마 투어 프로 중에는 후자의 사례가 훨씬 많을 것이다.
개중에는 동반하는 경쟁자의 흐름을 깨려고 일부러 샷 준비를 느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얄미운 심리전이다. “페어 플레이에 어긋나는 행동이지만 이 경우 사실 자신의 경기를 잘하고 있든 아니든 그 기저에 불안이 존재하기 때문에 타인을 많이 의식하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정 대표는 동반자의 슬로 플레이가 거슬려서 경기에 영향을 받는다는 선수들의 고민을 자주 접한다고 한다. 그럴 때 조언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라”는 것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나 자신이고 환경, 즉 타인의 느린 플레이는 통제하기 어렵다. 나만의 리듬이나 루틴이 있을 텐데 그게 환경에 영향을 받아 흐트러지는 데 집중을 하는 게 아니라 나만의 루틴은 그대로 실행하고 남은 시간엔 마인드나 코스 매니지먼트, 샷에 대한 점검 등 자신과 자신의 경기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상대방이 느려서 조급해지는 게 아니라 그걸 오히려 이용해서 시간과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플레이가 느린 것 같아서 계속 신경이 쓰이고 그래서 경기를 잘 못하겠다는 선수도 있다.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거나 또는 경기위원의 재촉을 받고는 자신이 해야 할 루틴조차 하지 못한 채 급하게 움직이면서 압박감에 시달리는 경우다. 정 대표는 이 경우 행동을 좀 더 세분화하도록 해 새로운 루틴을 만들고 단순한 방향으로 행동 패턴을 수행하도록 개선을 유도한다.
행동의 세분화는 골퍼 스스로 플레이 속도를 높이기 위한 심리적인 준비에도 효과적이다. 정 대표는 “샷 준비에 있어 정말 필요한 행동과 불필요한 행동을 구분하도록 한다. 그렇게 행동 패턴을 가장 효율적으로 세팅한 후 그 패턴을 따르고 익숙하게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추어 주말 골퍼에게도 필요한 노력이 아닐까.
슬로 플레이는 남의 얘기? 자가진단 하고 가실게요~
로리 매킬로이는 슬로 플레이 규제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일반 골퍼는 투어 프로를 따라하기 때문에 투어 측은 (적극적인) 규제를 서둘러야 한다.”
우리 아마추어 골퍼들은 실제로 투어 프로처럼 골프를 치고 싶어하고 그들이 쓰는 용품에도 관심이 많다. 투어 프로들이 슬로 플레이에 거대한 반기를 들고 행동에 나섰다면 우리도 스스로 늑장 골퍼는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여기 늑장 골퍼 자가진단표가 있다. 10개 중 5개 이상이 내 이야기라면 당신은 ‘빼박’ 늑장 골퍼다. 웃고 넘길 일이 아니다. 새봄 첫 라운드에 앞서 샷 연습 말고 숙제가 하나 더 생겼다는 뜻이다. 그동안 당신만 몰랐지, 동반자들은 당신의 등을 향해 레이저를 쏘고 있었을지 모른다. 전 세계 주요 투어가 슬로 플레이와 전쟁을 선언했듯 당신도 이제 달라질 때가 됐다.
□ 18홀에 멀리건 3개는 ‘국룰’이다.
□ 어드레스 서서 볼을 바라보면 지나간 인생이 2시간짜리 영화처럼 펼쳐진다. 이래서 골프를 인생의 은유라고 하나보다.
□ 숲으로 간 공 찾는 덴 제한시간이 있지만 티샷 후 날아간 티를 찾는 덴 시간 제한이 없다. 소중한 내 티.
□ 어떤 상황이라도 골프는 뒤에 있는 사람이 먼저 치는 운동이다.
□ 잘 보이던 앞 조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우리만 ‘황제골프’ 치는 셈이라며 껄껄 웃는다.
□ 라운드는 귀한 사교의 장. 카트 안의 대화에 집중하고 그린의 모양은 반드시 그린에 올라간 뒤에 파악한다.
□ 골프에서 가장 중요한 건 퍼트. 뒤 조가 기다려도 그린 위는 불가침의 영역이다. 넉넉하게 시간을 쓸수록 잘 들어가는 게 퍼트다.
□ 나는 예의 바른 골퍼. 핀에 붙이는 동반자의 굿샷에 박수 치고 달려가 하이파이브까지 한 뒤에 내 샷을 준비한다.
□ 다음 샷을 하려고 골프백에서 클럽을 꺼내갈 때 당연히 하나만 꺼낸다.
□ 주머니에 불룩하게 튀어나온 여러 개의 공처럼 없어 보이는 것도 없다. ‘원 볼 플레이’는 공 1개로 18홀을 돌라는 얘기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