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서울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3년 뒤 의대에 지원하면 그동안 정부로부터 받은 교육비를 전액 환수해야 한다. 세금으로 운영되는 영재고를 다니면서 이공계가 아닌 의대로 진학하는 학생들의 ‘먹튀’를 막기 위한 대책으로 다른 영재학교나 과학고로 제도가 확산될 지 주목된다. 하지만 영재고 졸업 후 재수를 통해 의대에 입학하는 학생은 제외돼 이번 방안의 한계를 지적하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1,500만원의 비용이 아까워 자녀의 의대 진학을 포기할 학부모가 많지 않은 데다 우수 인재의 이공계 기피라는 근본 문제 개선이 동반되지 않을 경우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다.
2일 서울시교육청은 서울과학고등학교와 협의한 ‘2021학년도 서울과학고 선발제도 개선 및 이공계 진학지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이번 방안에 따르면 교육청과 서울과고는 내년도 신입생을 시작으로 재학생이 대학입학 지원에서 의대에 지원할 경우 그동안 무상으로 제공한 교육비 전액을 환수하기로 했다. 서울과고는 영재교육법에 따라 과학·기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설립된 영재학교로 1인당 연간 약 500만원의 교육비를 지원받는데 학생이 이공계가 아닌 의대를 선택할 경우 재학 기간 동안 받은 1,500만원을 반납해야 하는 것이다. 학비 반납에 더해 교내대회 시상 취소, 장학금 환수, 의대 희망 학생 일반고 전학 권고도 함께 추진될 예정이다. 교육청 관계자는 “영재학교 졸업생의 상당수가 의학계열 대학에 진학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돼 이번 진학지도 강화 방안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영재고 학생들의 이공계 기피-의대 선호 현상은 서울과고에만 해당 되는 일이 아니다. 이찬열 바른미래당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4년 동안 전국 8개 영재학교를 졸업해 대학에 입학한 2,578명 학생 중 의학계열에 진학한 학생은 211명(8.2%)에 달했다. 이는 재수생은 제외한 것으로 실제 의대 진학 학생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학교별로는 서울과학고의 의학계 진학자 수가 22.8%로 가장 많았다. 졸업생 5명 중 1명 꼴로 의대를 진학한 것이다. 이외에 대전과학고(9.2%), 경기과학고(9%), 광주과학고(6%), 인천과학예술영재학고(5.8%), 대구과학고(3.9%), 세종과학예술영재학교(3.5%) 순이었으며 부산 한국과학영재학교 한 곳만 졸업생 519명 전원이 설립 목적에 맞게 이공계열로 진학했다.
서울시교육청의 의대 진학 억제 방안은 영재고에 우선 적용되지만 서울의 다른 과학고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서울교육청 관할 세종과학고, 한성과학고의 경우 재학생 의대 진학 비율이 서울과학고만큼 높지 않아 이번 정책 적용 대상은 아니다”라면서도 “향후 의대 진학 비율이 높아질 경우에는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대 진학 억제방안인 교육비 환수는 3학년 때 대학 입시에서 의대에 지원한 경우에만 적용된다. 졸업 후 재수 등을 통해 의대에 지원하면 교육비를 환수하지는 않는다.
다른 시도교육청이 관할 영재학교와 협의해 교육비 환수 정책을 추진할 수도 있다. 현재 전국 8개 영재학교 중 서울과학고에 앞서 부산 한국과학영재학교가 재학생이 의대 진학 시 교육비를 전액 환수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과학영재학교의 경우 최근 4년 의대 진학 학생이 한 명도 없는 등 정책 효과도 높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부산 한국과학영재학교에서 정책 효과가 높아 서울과고도 교육비 환수를 도입하게 됐다”며 “부산 한국과학영재학교 외에는 교육비 환수 정책을 추진하는 곳은 없는 곳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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