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암호화폐 열풍을 잠재우겠다며 내놓은 고강도 규제를 놓고 헌법을 위배한 게 아닌지를 따지는 공개변론이 다음달 열린다. 정부 규제 이후 2년여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암호화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다시 한 번 환기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 사건이 위헌 결정으로 결론 날 경우 암호화폐 관련 법률 제정 작업이 급물살을 탈 수 있음은 물론, 최근 부동산시장 대출 규제를 비롯한 정부의 모든 은행업무 개입 행위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내년 1월16일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에 대한 위헌 확인 사건을 두고 각계 의견을 듣는 공개변론을 연다. 암호화폐가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한 신종 산업이고 헌법재판관들은 중장년층에 몰려 있는 만큼 신중한 판단을 내리기 위한 조치다.
심판 대상은 정부가 암호화폐 투기를 근절하겠다며 2017년 말부터 내놓은 일련의 고강도 규제다. 정부는 2017년 12월28일 긴급 관계부처 차관회의를 열고 △암호화폐거래소 폐쇄를 위한 특별법 제정 검토 △거래 실명제 실시 △시세조종 등 불법행위에 대한 구속수사와 법정 최고형 구형 △가상계좌 신규발급 전면 중단 등의 내용이 담긴 특별대책을 발표하고 이듬해 1월부터 전격 시행에 들어갔다. 당시 정부는 “미국·유럽연합(EU) 등 주요국 중앙은행과 전문가들이 암호화폐 가격 거품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며 “이런 ‘비정상적 투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희찬 안국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정부 대책 이틀 뒤인 12월30일 투자자 347명을 대표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정부의 강압적 규제가 국민의 재산권과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했다는 게 요지였다. 정부 조치 이후 암호화폐 기술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식은 상황에서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된 지 무려 2년1개월 만에 헌재에서 처음 공론화되는 셈이다.
정 변호사는 무엇보다 암호화폐 거래 실명제에 위헌 요소가 있다고 봤다. 정부 당국의 조치만으로 은행들이 수신 잔고에 큰 도움을 주던 가상계좌 발급을 일시 금지한 것 자체가 초헌법적 권력행사의 결과라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이에 대해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따랐다”는 입장이지만 정 변호사 등 청구인들은 은행장과 임직원에 대한 금융위의 막강한 권한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해당 규제들이 국회 입법을 통하지 않고 법률적 근거 없이 시행됐다는 점도 위헌으로 판단될 부분으로 꼽혔다.
이날 공개 변론에서는 암호화폐의 본질 문제부터 이것이 금융당국 규제의 대상인지, 규제에 은행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했다고 볼 수 있는지 등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청구인 측 입장을 대변할 참고인으로는 장우진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가, 피청구자인 금융위 입장을 지지할 참고인으로는 한호현 한국전자서명포럼 의장이 각각 나설 예정이다.
해당 사건에 대한 최종 결론은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위헌 결정이 나올 경우 암호화폐 시장은 제도화의 길을 걷고 활성화를 띨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또 부동산 대출 규제 등 비슷한 관점의 다른 헌법소원 사건 결과에도 잇따라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합헌으로 끝날 경우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는 계속 이어질 공산이 크다.
법무법인 충정의 안찬식 파트너변호사는 “암호화폐에 대한 제재는 다른 나라에도 있는데다 정부 규제 당시 어느 정도 사회적 합의도 있었기 때문에 전격적인 위헌 결정을 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하지만 위헌 결과가 나올 경우 암호화폐가 다시금 국민적 관심을 얻어 시장이 활성화될 수도 있고 정부도 이에 맞춰 법률 제정 등의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경환·김흥록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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